본격적인 리뷰 시작에 앞서 비판점이나 아쉬운 점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최대한 표현을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했으나, 부족한 점이 있으리라 봅니다. 이 리뷰를 읽는 유저분들과 작가님께서 기분 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치밀함이 아쉬운 단편
처음에는 추리/스릴러 장르만 보고 큰 기대를 안고 작품을 읽어내려갔다. 제목도 대놓고 ‘살인사건’이었기에 치밀한 심리묘사, 추리를 위해 잘 짜여진 이야기 등을 기대했다. 그러나 읽어내려갈수록 이야기에 힘이 없어 휘청거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애초에 사건이 복잡하지 않아 독자가 추리를 할 여지가 크게 없었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단서를 통해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범인이 진상을 실토했기 때문이었다.
주인공 윤보미의 1인칭 시점에서 그녀의 삶과 사건이 적절히 교차되거나 배분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스릴을 느낄 새도 없었다. 서사의 치밀함은 물론이고 여러모로 엉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편이라고는 하나 처음 계획 단계에서 조금만 더 독자 입장에서 어떻게 읽힐지를 계산해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캐릭터들의 모호함
앞서 이야기에 힘이 없고 추리할 여지와 스릴을 느낄 만한 부분이 없다고 감상을 밝혔다. 여기에 더욱 아쉬운 점은 바로 캐릭터들의 모호함이다. 소설의 길이가 길든 짧든 캐릭터의 힘은 절대 무시하지 못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주인공 윤보미를 비롯, 살인사건의 범인인 권리하와 박지훈. 세 캐릭터 모두가 매력이 별로 없는 모호한 느낌이었다.
그나마 개성이 있는 인물을 꼽자면 주인공인 윤보미인데 드라마틱한 인생사에 비해 그녀의 언행은 너무도 담담하게 묘사되고 있다. 화재 사건 속에서 부모님 덕분에 살아났다는 죄책감, 자신을 성추행해왔던 남자들에 대한 혐오, 사람들을 멀리하는 쓸쓸함, 자해 시도에서 비롯된 외곬의 기질까지… 정말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도 어째서인지 그녀에게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그저 나열하는 방식으로 그녀를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얼떨결에 지훈과 데이트를 하고 학과에 커플로 소문이 날 때까지 별로 크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는 점이 더 의아하게 느껴졌다. 보미가 정말로 작품에서 설정한 인물이었다면 좀더 극단적인 면이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텐데, 사실 그녀의 태도는 시종일관 모든 것을 관망하는 듯한 태도이다. 병원 치료를 통해 자해 시도와 죄책감에서 벗어난 현재를 지키고 싶어하는 마음도 전혀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감정이입도 할 수 없었을뿐더러, 흥미를 갖기도 어려웠다.
발전 가능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에는 발전 가능성이 있다. 우선 캐릭터들을 더욱 극단으로 몰고 간다면 정말 심장이 쫄리는 듯한 스릴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인공 윤보미가 흘러가는 대로 지내는 것이 아니라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살인자라 적힌 쪽지의 의문을 풀기 위해 더 발버둥칠 수도 있겠다. 아니면 권리하가 박지훈을 죽이는 순간에 느꼈던 감정을 더욱 강렬하게 묘사해도 좋을 것 같다.
사실 독자 입장에서 그녀가 왜 그렇게 지훈에게 집착했는지가 제일 궁금했다. 그렇기에 아예 리하를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설정이나 이야기 자체는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기에 이야기 구성과 캐릭터의 개성 등을 연구하고 발전시킨다면 훨씬 더 재미있는 작품이 탄생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