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찬히 작품을 읽어보며 가장 처음으로 느낀 것은, 전반적으로 우울하고 서글픈 정서가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작중의 주요인물들은 크건 작건 모두들 결여, 부정, 소외, 상실의 상처를 갖고 있습니다. 나아가 세계관부터가 기본적으로 기반을 가질 수 없는, 끊임없이 밤을 피해 도망쳐야 하는 상태. 즉슨, 태생부터 상실이 강제되고 있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특히 몇몇 인물들은 심각한 상황에서도 담담한(결코 원숙함이나 용기라고는 할 수 없는) 반응을 보입니다.
고전 애니메이션인 ‘카우보이 비밥’의 등장인물 스파이크 스피겔은 과거의 경험 탓에 ‘현실감’, ‘실존감’을 잃어버린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와도 비슷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이 작품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자리에 고정될 수 없이 영구적으로 떠돌이 생활이 강제되며, 공동체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점에서 오는 것이겠지만요.
정리하자면, 이 작품은 현재를 살면서도 현재에 묶여있지 못하고, 삶의 표면에서 살짝 벗겨져 나와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내부에서 자신들을 묶어줄 밧줄을 찾지 못해 외부로 눈을 돌렸죠. 거기 있는 것은 새벽을 향한 모험이라는, 다소 흐릿하면서도 막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부터가 현실에서 흐릿한 존재에 가까웠다는 걸 생각하면, 그만큼 좋은 선택지도 없을 겁니다.
주제를 조금 바꿔보면, 모험을 시작하기까지의 전개가 상당히 느립니다. 인물들 자체도 여럿이고, 여러 번 시점을 바꿔가며 진행하다보니 어쩔 수 없긴 합니다만. 그리고 그 느린 속도가 묘하게 무기력하고 우울한 정서를 강조시키는 효과를 줘서, 본인은 그렇게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점입니다.
그런데 막상 모험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진도가 훅훅 나갑니다. 모험 이후에도 느릿느릿하면 곤란하긴 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직전까지 느린 속도에 발맞춰 가던 것에 적응이 되어 있다보니, 독자 입장에서 다소 괴리감이 느껴지기는 하는 것 같습니다. 구성 상 어쩔 수 없는 단점이죠.
개인적으로 구 인류가 남긴 인공지능들의 등장은 상당히 갑작스럽습니다. 작품 배경 상황을 짐작할 만한 요소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상술한 전개 속도와 맞물려서 뜬금없게 느껴지는데, 글쎄요. 어떤 의도이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점을 제하고 본다면, 과정은 차처해두고 자신을 현실에 묶어줄 목표를 찾은 인물과, 그 목표가 완수되면 그나마의 실존마저도 날아가버리는 인물들의 대립은 마음에 듭니다. 그중에서도 대부분의 인물들과는 달리 ‘돌아가야 할 이유’가 분명한 인물이 있다는 게 그렇습니다.
안쓰러운 애들끼리 안쓰럽게 마찰을 빚는데, 안 좋을 수가 없더군요.
아무튼, 분위기 자체는 취향에 잘 맞았습니다. 다소 걸리는 부분들이 있긴 했습니다. 장단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전망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