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서린 거울처럼 뚜렷한 윤곽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 공모(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지구를 떠난 황새 (작가: 위드, 작품정보)
리뷰어: 양하쓰, 20년 1월, 조회 52

‘지구를 떠난 황새’.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제목인가 궁금해하며 쭉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리뷰를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매번 리뷰를 쓸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언제나 칼같이 분석하는 데다, 직설적이고, 칭찬에 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 리뷰 또한 아마 의문점에 대한 지적과 비판적인 내용이 대부분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넓은 마음으로 양해하며 읽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 그녀, 황새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가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상 내용으로 보자면 그녀가 ‘황새’의 정체이자 주인공인데 말이다. 그녀에 대한 단서는 오로지 ‘나’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심지어 그는 그녀에게 관심조차 제대로 없던 것처럼 보인다. 그저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항성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만 안다. 그녀가 어떤 이유에선지 그곳으로 가고 싶어한다는 것은 유추할 수 있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녀의 삶에 대해서도 몇 가지 정도다. 야근이 잦은 편이며, 집에 빚이 많고, 아버지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병원비를 축내는 존재인 지 오래고,  어머니와는 매일 한 시간씩 통화해야 하는 피로한 삶이라는 사실 정도. 그러나 ‘나’는 이것만 가지고는 그녀가 떠난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녀가 직접 등장하는 부분이 회상 장면에서 단 몇 번뿐이니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결정적인 장면이랄 것도 딱히 없었다.

 

‘나’라는 인물이 화자인 데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렇다면 ‘나’라는 인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실 주인공 주변의 인물이 화자로 나서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특히 맨부커상 수상으로 유명한 <채식주의자>는 한강의 연작소설인데 단 한 번도 주인공이 화자로 나서지 않는다. 1부에서는 그녀의 남편, 2부에서는 그녀의 형부, 3부에서는 그녀의 친언니가 차례대로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주인공의 심리를 읽어내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신기한 노릇이다. 주인공과 가까운 사람들이 주인공에 대해 말하게 함으로써, 이야기의 입체성이 드러나고 개성이 부각된다. 물론 이 작품도 그랬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예로 들었다.

이 작품에서 ‘나’라는 인물은 우선, 그녀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그녀와 동거까지 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사라진 사실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자연스럽게 동거를 하게 된 사이라 해도, 그 감정의 기저에 슬픔과 사랑이 없었을 리가 없다. 만약 그녀의 실종에 충격을 받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가정해도 전혀 그런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담담하게 쓸쓸함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놓을 때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결국 그는 그녀가 사라지기 전에 어떠한 예방책도 마련하지 못한 것을 후회만 할 뿐,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사실 이를 두고 윤리적으로 무책임한 행동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소설적으로 봤을 때는 결코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그가 주인공으로 나선 이유는 그저 그의 후회를 담기 위해서였나, 그럼 왜 그녀를 ‘황새’라고 불렀나, 작가는 왜 제목을 그녀가 주인공인 양 썼는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추상적인 관념을 위한 이야기

그럼 이 이야기의 존재 의의는 무엇인가. 사라짐이란 추상적 관념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단순히 삶을 끝내는 죽음보다도 견디기 힘든 현실을 벗어나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고 여긴 그녀에 그가 이입한 결과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이야기라 보기에는 여전히 무리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다만 이 추상적인 관념, 인간의 부재, 그녀에게 사라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조금 더 깊이 고민했다면 더 발전된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단순히 일상이 너무 지치고 고되어서, 가족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 되어서, 갚아야 할 빚이 산더미라서, 같은 표면적이 이유가 아니라… 오로지 그녀만이 말할 수 있는 ‘사라짐’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야기를 쓰기 전 충분한 고민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까,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있는 것 같았으나, 뚜렷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마치 김이 서린 거울처럼.

 

 

매번 그러려고 그러는 게 아닌데 이번 리뷰도 신랄한 어조로 쓰게 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부디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리며,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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