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임을 위한 조금 모자란 예찬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슬라포칼립스 (작가: 녹차백만잔, 작품정보)
리뷰어: 잔흔이, 1월 10일, 조회 70

슬라임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슬라임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어 리뷰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소 친절하지 못하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리뷰를 쓰는 스타일이라 조금 불편하신 점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리뷰 전체가 스포일러입니다.*******************************************

 

슬라임처럼 녹아들지 못한 이야기

이 작품의 서두는 다소 부산스럽다. 김 씨와 박 씨, 혜민과 미영, 민국과 대한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차례대로 등장하며 슬라임 경보가 울리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중에서도 슬라임을 막아보려는 군대의 역할이 돋보인다. 이들은 각자 대응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런데 그 방식을 보여주는 방식이 매력적이지 않다. 그저 한 장면, 한 장면 나열에 불과하고 다분히 흥미 위주의 내용들만 가득하다. 보통 종말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는 초반에 이렇게 다수의 인물이 나온다 해도 중반부터 어느 한 장소에서 만나거나 서로 인연이 닿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들이 나온 이유는 대체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 작가의 의도가 매우 모호하다. 물론 반드시 기존의 클리셰를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들 사이에 접점은 있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또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은 ‘슬라임 경보’라는 용어였다. 실제로 국가에서 내보내는 공적인 방송이라면 ‘슬라임’ 대신 다른 용어를 썼을 것 같다. 물론 허구성이 가미된 이야기므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소설이 그럴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현실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 물론 독자가 실제로 어느날 갑자기 슬라임이 나타나 거리를 점령할 거라고 믿지는 않겠지만, ‘슬라임 경보’라는 용어는 안 그래도 허구적인 이야기를 접하는 독자들의 기대를 반감하는 처사가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으로 강한 산성을 지닌 슬라임이 외모가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공격을 받지 않고, 오히려 선망을 받는 존재로 신격화되는 부분이 설득력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감수성이 상대적으로 메말라 있던 김종철’이라는 대목까지도 그렇게 느껴졌다. 사실 뒷부분에는 ‘1/f 리듬’이라는 음악적 개념이 등장해 슬라임이 왜 사람들을 홀리게 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려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흐름에 맞지 않게 쌩뚱맞게 등장하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작가는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려고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흐름상 자연스럽지 못하고, 그 때문에 설득력이 약하다.

결국 등장하는 인물들의 파편성,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어휘 선택, 어색한 흐름 속에 나온 설득력이 부족한 개념 등에서 이 작품의 취약성이 드러난다. 위에서 지적한 부분들 모두가 작품의 중요한 요소들인 등장인물, 현실성, 당위성 등인데 이들이 슬라임처럼 이야기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따로국밥이 된 것 같았다.

 

 

스스로 약점을 드러내지 말 것

위에서 말했던 것보다 더 큰 문제로 느껴진 것은 ‘무지개 슬라임’의 등장씬이었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스스로가 개연성의 부재를 언급하고 만다. 이는 정말 초보적인 실수로 느껴졌다. 독자 입장에서 이 부분을 읽고 과연 매력을 느꼈을지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한다. 개연성이 없어 보여도 개연성을 부여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그런데 작가는 대놓고 ‘당연히 현실에 이런 일은 없어’라는 생각을 드러낸다. 스스로 약점을 드러낸 꼴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슬라임이 진짜로 나타났을 때 어떨지, 지독하게 상상해보며 현실적인 묘사를 고민하고, 설령 개연성이나 현실성이 없다 해도 뻔뻔하게 밀고 나가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

여기서 최근 브릿G에서 읽은 중단편 <모스키토맨>을 추천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최근에 읽었고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적어도 작가가 푹 빠져 썼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렇기에 계속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몰입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에 확신을 가진다는 것은, 설령 어떤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하더라도 자신감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힘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야기든 현실에서 출발해 작가의 상상으로 꾸며진다. 그러니 다음부터는 부디 조금 더 뻔뻔해지길 바란다.

요약하자면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에 확신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 자신감이 없는 것은 곧 독자에게 약점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슬라포칼립스>는 소재는 매우 참신하나 확신이 부족했던 작품으로 다가왔다. 만약 작가가 이 이야기에 확신이 있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했다면 좀더 이야기가 선명했을 것이며 믿음(현실성)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슬라임이 가져온 것은 종말이 아닌 평화

위에서 비판들만 늘어놓아 좋았던 점들을 꼽아보고자 한다. 우선 슬라임이 가지는 ‘평화’라는 메시지가 좋았다. 제목만 보면 흔히 아는 종말이 찾아와야 맞는데, 슬라임은 종말이 아니라 평화를 가져왔다. 군중들은 슬라임에 저항하지 않고 그가 건네는 치유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또 슬라임은 파를 나누어 싸우는 사람들 사이의 장벽을 허물기도 한다.

사실 슬람임에 이러한 상징성이 있다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슬라임이 가져온 것이 극도의 평화였으니, 그 전에 인간들의 행태가 극도의 갈등이었다면 극과 극을 이루는 멋진 구도가 되었을 것 같다. 슬라임 그 자체가 주는 평온함, 안온함, 안정은 어쩌면 싸움과 경쟁에 지친 우리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바라던 것일지도 모른다. 즉, 단순히 슬라임이 귀엽다는 것에서 벗어나 이런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면 훨씬 감명 깊은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상으로 리뷰를 마칩니다. 슬라임을 예찬하는 건 좋았지만, 조금 모자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네요. 분명 작가님께서도 슬라임 그 자체보다는 슬라임이 주는 귀여움, 부드러움, 안정감에 매력을 느끼셨던 거겠죠. 어쨌든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기발하고 참신한 작품을 많이 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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