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런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도 억센 슬픔의 순간 같은 상실과 결핍의 경험도 지나가면 곧 일상이 되고 인생의 한 부분으로 녹아 든다. 하지만 상실과 결핍의 경험은 삶의 온도를 변화시킨다. 상실과 결핍의 경험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공간 감각을 둔화 시키기 때문이다.
이나경 작가님의 <포스트 잇!>은 오늘 같은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따뜻한 감동이 담겨 있는 이야기다. 아직 상실과 결핍을 경험하지 못한 어린 남매가 신비한 마법(?) 포스트잇을 만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한다. 남매 중 오빠는 아빠의 부재와 그 부재의 원인을 아는 듯하지만 여동생은 아빠의 부재라는 상황 자체도 이해하지 못할정도로 어린 나이다. 이야기 속 남매를 지켜보며 누군가를 상실한 사람은 유예 기간을 겪어야만 진정한 슬픔에 이르게 된다는 어느 소설의 문구가 떠올랐다.
“깊은 슬픔은 단번에 그냥 주어지지 않아. 어느날 문득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을 뿐인데 두 눈에서 용암처럼 눈물이흘러나와 귓속에 고이지 않던가.”
우리 각자는 맑은 슬픔, 헛헛한 슬픔, 차가운 슬픔, 말간 슬픔 등을 가진 하나의 섬이다.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각자가 겪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우리는삶의 흔적, 슬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위로하게 된다.
앞으로 남매가 살아갈 세상은 분명 아빠와 엄마가 살아온 세상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남매가 살아갈 세상에도 아빠와엄마의 세상이 그랬듯 그 시대와 상황이 만들어내는 일렁임은 존재할 것이다. 꿈은 거친 삶의 파도 앞에 좌초되거나 상실과 결핍을 겪으며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의 위기를 맞은 남매에게 필요한 것은 힘든 현실속에서도 엄마란이름으로 또 오빠와 동생으로서 묵묵히 지켜봐주고 지지해 주는 가족의 사랑 아닐까?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겪는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이다. 이 세상에 완전한 어른은 없다는말처럼 남매도 자신의 시대에 존재하는 일렁임을 경험하고 극복하면서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시대의 풍랑을힘겹게 견뎌내야할 때 내가 살아 있고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즉, 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것 이상의 응원이 있을까? 각자가 가진 삶의 조각들이 가족의 사랑 안에서 하나의 조각(One Piece)으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포스트잇의 진정한 마법이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행복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