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래도 못 믿겠어… 그렇지만? 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프로파간다에서 화장실 로맨스 착즙하기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폴카, 19년 12월, 조회 254

문득 글을 읽고 생각이 떠올랐으나 단문으로 쓰기엔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올라 직접 리뷰를 남기기로 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부분들 위주로 짚어나가며 이야기를 해볼게요.

 

“마음만 고맙게 받을게, 난 그래도 못 믿겠어.”

 

가장 읽기 힘들었던 부분이자 가장 시선을 사로잡았던 부분이라면 역시 이 문장일까요. 어떤 기제로 은수가 로맨스를 거부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경험이 잘 드러나 있어서 로맨스라면 어느샌가 학을 떼고 있는 제 개인적인 경험이 공명하기 때문에 뭔가 턱하고 걸리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물론 그런 제 경험이 은수와 100% 일치한다기엔 차이가 많이 있지만, 젠더 정체성을 무시당했다는 경험으로는 공통된 이야기이니까요. “마음만 고맙게 받을게, 난 그래도 못 믿겠어.” 라는 한 마디가 입에서 떨어지기까지 은수가 생각했을 것을 떠올리면 남 이야기 같지가 않더라구요. 나도 새로운 인연 만나고 싶다고, 그렇지만 목숨을 담보로 인연을 만드는건 어렵다고.

 

 

한편으로는 그런 은수를 사랑하고 지지해주고 싶은 B의 심리묘사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것은 얼마나 일방적인 착각이었는지.” 라는 문장이 차갑게 날아와 심장에 꽂히네요, 대부분의 일들은 지지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해결되지 않으며, 그 사실은 지지자와 소수자 양쪽이 서로 잘 알고 있을겁니다.

도움이 되고 싶지만 “나는 어떻게 해도 도움이 될 수 없구나.”라는 처절한 무력감이 감정을 흐리게 만들죠. 당사자 또한 지나치게 가드를 올려서 상대방을 상처준게 아닐까 생각하고, 더 단단한 벽을 주위에 세웁니다. 소수자가 갖는 현실의 인간 관계는 이런식으로 고립되어가죠. 

한편으로는 B에도 이입할수 있었고 은수에도 이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두 번 울었습니다. 소수자의 세계에 세워지는 장벽은 결코 깰 수 없을것만같이 느껴지고, 현실 세계에서는 실제로 그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렇지만 어지간히 친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 정도의 감정 노동조차 버거워진다. 애초에 성 소수자 혐오를 조금이라도 보이게 되면 선을 긋고 거리를 두게 된다.’

 

이 부분은 레즈비언인 B가 한 이야기이지만 성소수자 공통정서로 어느정도 자리잡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야 성 소수자들은 설명하려, 소통하려 시도하죠. 그러나 설명해줘서 알아듣는건 극소수에, 때로는 소통을 거부하고 그냥 없는 취급 해버리는 경험을 당한 성소수자들이 과연 그들 앞에서 ‘설득’, ‘설명’을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을 10명 만나면 그 중에 9명은 성소수자 혐오를 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 사람들에게 전부 설득하려 시도해보지 않았을까요? 이윽고 성소수자인 개인은 깨닫게 됩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9명을 설득하기보단 그냥 내가 가드 올리고 살겠다고.

“B야, 명심하렴. 자영업자에게 중요한 것은 첫째도 체력, 둘째도 체력, 셋째도 체력이란다.”

 

현실을 반영하는 성격이 강한 프로파간다 시리즈였기때문에 정신력 소모가 강했지만 이런 표현이 중간에 휴지로서 기능하고 있는 점도 좋았습니다. 독자의 정신적 자원도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긴장이 있으면 그를 풀어주는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은 독자가 읽기를 지속하게 도와줍니다. 이런 부분도 저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어요.

 

갈등의 해결점이 되는

 

행복한 결말이지만 조금은 쓴 맛을 느꼈어요, 그런 쓴 맛마저 즐길수 있는게 창작물의 묘미지만요. 오히려 역시 이럴 때는 “현실은 충분히 행복하지 못하니까 창작물의 결말만큼은 행복해야 한다”는 어떤 기대감이 충족되기도 하구요. 창작물의 막바지에는 요즘 퀴어 서사로서 자주 이야기 되고 있는 겨울왕국이 언급되고 있네요, 겨울왕국에서 보여주고 있는 수많은 은유 또한 작품 의식과 일관되기 때문에 그 부분 역시 생각해 볼 점이 있었네요. 한 해를 마무리지으며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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