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스릴러나 미스테리물이 여러개의 의미를 가진 결말의 가능성을 둔 채로 매듭지어지는 걸 좋아하진 않습니다.
‘독자들의 다양한 취향에 맞춰서 이런저런 결말을 준비했으니 맘에 드는 걸 선택하세요.’ 같은 스타일은 왠지 작가가 해야 할 고민을 독자에게 넘겨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물론 열린 결말을 좋아하시는 독자분들이 많다는 것도 압니다. 순전히 취향 문제죠.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제 스타일은 아니지만 제 취향의 심장부를 제대로 저격한 작품이라고 소개를 드려야겠습니다.
쓰고 보니 저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뛰어난 작품은 취향을 타지 않는다.’ 라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지도 모르겠네요.
이 작품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결말로 받아들이는 게 가능한 소설입니다. 작가님은 100매도 안되는 분량에 생각할 거리를 많이도 넣으셨어요.
먼저 주인공의 시점에서 보면 친한 친구이자 모든 일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진오를 보는 두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말에 나온대로 받아들이자면 진오는 범죄 역사에 남을 만한 뛰어난 두뇌를 가진 천재 연쇄살인범이 되겠죠.
학창시절부터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아무에게도 발각되지 않은 걸로 모자라 친한 친구에게 죄를 완벽하게 떠넘기는 데까지 성공했으니까요. 실제로 범죄가 존재했다는 가정하에 성립되는 가능성이겠지만, 그렇다면 결말에서의 행동에는 상당한 의문이 남습니다.진오는 주인공의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도 그저 친구로서 보일 수 있는 덤덤한 반응만을 보이다가 결국 분노에 눈이 먼 주인공의 칼에 찔리게 되는데, 그 전에 보여주었던 반응들(영화화되는 걸 반대했다던가, SNS의 내용을 주인공이 보게 두었다가 바로 삭제한 것 등이 됩니다.)을 생각해보면 일관성이 떨어지는 행동들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볼 수 있는 또다른 가능성은 주인공의 망상입니다.
주인공은 자신보다 뛰어난 글솜씨를 가진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끼던 중, 그의 글을 훔쳐 출판을 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여기서 진오의 반응이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데, 화를 내거나 협박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묻어버릴 수도 있었던 진오가 선택한 방법이 아주 신묘합니다.
진오가 실제로 그의 글에서 묘사된 살인범이라면 이야기는 간단하겠지만, 그런 글이 담긴 공책을 친구에게 쉽게 공개했다는 점, 자신의 글로 주인공이 유명해진 후에 연락을 했다는 점 등에서 제가 추측한 가능성은 친구 진오의 복수, 한마디로 진오의 계획된 거짓말에 주인공이 말려든 게 아닐까 하는 겁니다.
이야기의 초반부를 보면 주인공은 학교내에 존재하는 아이들 중, 괴롭힘을 당하는 쪽보다는 괴롭히는 쪽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전형적인 왕따에 가까운 진오를 그냥 내버려 두었을까…
직접적으로 표현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평범한 우정은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보았습니다.
친구를 가장한 주종관계, 학창시절 자신을 괴롭히고 자신의 습작까지 빼앗긴 진오는 자신의 글로 돈과 명예를 거머쥔 친구를 보며 가장 타격이 크고 확실한 복수의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진오가 파놓은 함정으로 스스로 한발한발 걸어들어가 파멸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이 가설에는 침대에 있던 머리카락이라던가 마지막에 순순히 주인공의 분노에 몸을 맡기는 진오의 모습같은 의문점이 있습니다.
대체 수수께끼의 공책에 담긴 내용은 사실일까요? 과연 그걸 쓴 건 진오인 걸까요?
아아… 저로선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아요. 이제부턴 브릿G 독자분들의 칼날같은 지성에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연쇄살인범은 주인공이고 자신의 망상에 친구를 끌어들인 게 아닐까 하는 가능성도 제기해 보았으나, 그럼 모든 이야기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고 비약이 지나친 반전이라 생각되서 제껴두었습니다.
자, 이제 엘러리 퀸의 추리소설을 후반부까지 읽으면 나오는 질문 스타일로 끝맺겠습니다.
독자에게 던지는 도전장
이제 주인공과 진오 사이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 사람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뿐입니다.
모든 상황과 증거는 제시되었습니다.
과연 이 끔찍한 이야기의 진상은 무엇일까요?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범죄의 흔적이 담긴 공책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 답은 바로!!
작가님이 알려주셨으면 좋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