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지성은 경험과 지식의 총체인가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스키마 리셋터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알렉산더, 17년 3월, 조회 109

나는 왜 하필 나일까?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나의 ‘생각’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렇게 하는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뇌에서 자유로이 오가는 전자 신호들이 어떻게 하나로 모여 생각을 이루는지, 그 생각은 어디서 기원하는 것인지, 명쾌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없지요. 기껏해야 뇌의 어느 부분이 어떤 역할을 맡고 있더라 정도가 밝혀진 상황입니다. 이 소설은 그에 대한 연구가 엄청난 발전을 이룬 끝에, 사고의 틀을 이루는 ‘스키마’를 외부에서 리셋시키는 장비가 개발된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스키마 리셋터’는 스키마를 리셋시켜, 상대방의 모든 편견과 입장, 고집을 없애고 완벽한 ‘역지사지’를 유발시킬 수 있는 장치입니다. 주인공은 인간관계 조율 연구실에서 일하는 연구원으로, 대문자동차의 노동자 김병수, 본사 상무 문상수, 하청업체 사장 이양지 세 명을 섭외하여 스키마 리셋터를 사용하는 실험의 피험자로 참여시켰습니다. 노조 간부인 김병수는 파업을 통해 회사에 노동자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하고, 문상수는 겉으로는 노조를 달래는 한편 속으로는 대파업으로 명분을 얻어서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려는 꿍꿍이를 갖고 있습니다. 하청업체 사장 이양지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착취당하는 하청업자들의 사정을 토로하며, 노조와 본사에 협력업체의 복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싶어합니다. 세 집단의 첨예한 대립 관계 속에서, 그들 모두가 스키마 리셋터를 사용할 동기가 충분합니다. 주인공은 이들을 통제하여 베타 테스트를 진행함으로서 스키마 리셋터의 성능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다른 작품인 ‘치킨 헤드’에서도 그렇고, 기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생생히 그려내시는 것을 보면 그와 관련된 경험이 풍부하신 것 같습니다. 이 단편의 장점 중 하나는 각 캐릭터의 대사가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인격이 생생하게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노동자 김병수에 대한 인터뷰에서 그는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제가 이 스끼마 리셋터를… 아 예. 예. 스펠링 정확해야죠. 스키마 리셋터. 예? 알았어요. 스펠링 아니고 발음. 거 펜대 잡고 일하는 거랑 실제 현장은 달라요. 그런 거 꼬치꼬치 따지지 말고, 본능과 직관으로 길을 뚫어요. 남자라면 현장에서 일해봐야지.

현장에서 일한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다소 거칠고 모자라지만 당당한 노동자의 성격이 디테일한 대사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다른 등장인물인 본사 상무와 하청업체 사장도 그 명확한 캐릭터가 말투에서 느껴집니다. 약간 아쉬운 점은, 이러한 캐릭터들의 성격에 스키마 리셋터를 사용했을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는 소설 내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스키마 리셋터의 효과가 보다 극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교수는 첫번째 테스트, 즉 알파 테스트에서 피실험자를 감금하고 극단적인 질문을 했다며 실험의 부당성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만약 피실험자를 감금하지 않고 아주 좋은 호텔에서 부드러운 질문을 하며 실험을 했다면 그 실험은 위험하지 않은 것일까요?

생각의 틀이 초기화된 사람이 원래의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갑자기 성격이 변화한 사람을 보면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 같다’고 표현합니다. 저라면 제가 현재 갖고 있는 입장, 가치관을 비롯한 생각의 틀이 초기화된 ‘저’는, 아무리 몸 자체는 원래의 제 몸과 같다고 해도 그 사람을 ‘저’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저처럼 글을 쓰는 취미도 없을 것이고, 제가 좋아하는 음식도 먹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어쩌면 제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게 어떻게 ‘저’일 수 있겠습니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스키마 리셋은 ‘인격 살해’와 다름없는 개념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실험에서 피험자의 스키마를 초기화시키는 순간, 그 사람의 인격을 일시적으로 죽인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실험은 애초에 정당화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애초에 사람을 상대로 이런 실험을 마음대로 하는 것 자체가 불법입니다. 스키마 리셋터가 의료기기든 일종의 무기이든, 임상 실험을 하기 위해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니까요.

작품의 결말은 열려 있지만, 정의의 실현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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