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가 없는 감상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티타임의 마르크시즘 (작가: 밀사, 작품정보)
리뷰어: 소멸, 19년 10월, 조회 149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밀사님의 글을 읽다 보면 참 인터넷 어휘 사전을 많이 뒤적거리게 된다. 분명 의미를 안다고 생각했던 단어들도 희미하고 모호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아서. 내가 무지해서 그렇다. 읽어본 책도 많이 없고 공부도 제대로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공부할 의지가 생기질 않았었다. 내가 이걸 왜 하는지, 왜 학교에 다니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서.

어릴 때부터 난 정상성이란 틀을 비껴간 존재였다. 유치원 때부터 주변 아이들과 제대로 말을 섞지도 못했고, 고등학교 때까진 심한 대인공포에 시달렸다. 시험 응시 전에 벼락치기식으로 공부하던 얕은 지식 말고는 난 학교에서 배운 것도 겪은 것도 없다. 대학에 가서는 텅 빈 대인기피 인간이기 때문에 학창시절을 유사하게 답습할 수밖에 없었고(과 생활도 하지 않았고, 동아리도 사람들과 섞이질 못하고 섞이는 법도 알 수 없어서 조용히 나왔다) 졸업 이후엔 정상성 안에 편입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동경하며 왜 나는 저렇게 될 수 없는지, 왜 저렇게 태어나지 못했는지 스스로를 난도질하고 자책하기 바빴다.

대다수의 사람은 상당히 기만적인 말로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런 문장을 쓰기가 무섭지만) 일을 하며 자기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수천수만 번은 생각했었다. 대인공포증이 심했던 경험과 스스로 텅 비어있다고 느껴지는 것 등등의 이유로 나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었고, 심지어는 단순 알바조차 지원하길 두려워해 평생 내 힘으로 돈을 벌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겨왔고 사랑을 받을 때는 스스로를 학대하고 또 학대해댔다. 네가 뭔데. 사람 기능도 제대로 못 하는 주제에 네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냐고… 나도 이런 생각하지 않고 사랑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왜 난 그럴 수가 없느냐고 숱하게 자학을 해댔고 비밀 계정에서 울어댔고 혼자 울었고 차라리 죽고 싶다고 수억 번을 그렇게 계속해서 써대고픈 충동에 시달렸었다.

 

룸펜이란 단어는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다. 다시 검색해보니 부랑자, 무직자, 노숙자 등 사회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었다.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멸시당하고, 버려지고, 조롱당하는, 그런 사람들. 나는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란 즉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라 받아들였다. 마르크스와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 등 계급에 관한 지식은 정말 기본적인 것밖엔 모른다. 세상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뉘며 피지배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지배층으로부터 착취당하며 살아간다는 그런… 그래서, 이 글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도 감이 잡히질 않는다. 이 글뿐만 아니라 밀사님의 글을 읽을 때는 거의 항상 그랬다. 이해하기 어려워도, 마치 짜맞추기 어려운 퍼즐을 보는 듯 머리가 아파도 그저 문장이 좋아서, 행간 사이사이에 녹아든 알 수 없는 힘에 속절없이 끌려서, 읽게 되는 글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의 내가 속한 계급은 룸펜이었을까. 노동자 계급에 간절하게 편입되고 싶은, 나의 고통을 외부로 꺼냈을 때 손가락질당하고 무시받는 것이 두려워 혼자만 앓아왔던 룸펜이었을까. 사실 나는 당최 내가 누구인지, 나라는 사람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 글을 난 어떤 입장에서 읽어야 할까. 노동자 사회에서 제외되고 멸시당하는 룸펜의 입장에서? 아니면 일당을 벌기 위해 노동하는 프롤레타리아의 입장에서? 그것조차 알 수 없어서 이렇게 두서없는 리뷰를 쓴다. 실은 아주 소수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나를 일종의 지배계급에 편입된 사람으로 볼 수도 있을 텐데, 그럼 대체 무슨 계급인 걸까. 자신이 속한 계급조차 정확히 정의할 수가 없어 방황하는 사람. 그게 곧 나를 이르는 말이자 계급이지 않을까.

 

부르주아지의 유구한 착취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 그 뒤편에서 죽어가면서도 뜬눈으로 그들을 직시하는 룸펜 프롤레타리아. 소외된 자들을 조명하는 글이라고 느낀 건 그전에도 밀사님의 트윗들과 문장들을 봐와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 이해력이 여기까지여서 행간 어딘가에 숨 쉬고 있을 의미들을 여기까지만 읽은 걸까. 앞에서도 말했듯 나는 무지하다. 무지하기 때문에 계급에 관한 깊은 지식을 늘어놓을 수도 없고, 앎에서 비롯된 견고한 주장과 견해를 내세울 수도 없고… 그렇다. 내가 느낀 건 고작해야 이 세계에 미래가 있을까. 정확히는 유토피아로 나아갈 미래가 과연 있을까, 같은 것들이었다.

정말이지 혐오가 만연한 세상이다. 조금이라도 더 정상성에 편입된 사람들은 자신들 기준에서 비정상이라 생각되는 집단을 마구 공격해댄다. 정상성이란 틀 바깥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공격받는 표적의 위치에 놓고는, 그런 식으로 살지 말라며 돌멩이를 하나씩 집어 툭툭 던진다. 그게 쌓이고 쌓여서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르고, 마침내는 터져서 곪고, 찢어지고, 고름이 흐르고, 썩어가는데도. 낮은 자리에 존재할수록 더 쉽게 존재가 지워진다. 멈춰달라고 호소해도 멈추지 않는 이들을 보면서, 이런 세상에서 희망을 포착하는 게 가능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애초에 정상성이란 뭘까. 정상성은 뭐고 비정상성은 뭐기에, 세상 저편에서 살아가는 룸펜들은 왜 일방적인 몰이해와 박해를 받아야만 할까. 내가 느꼈던 두려움은 결국 정상성에 속하지 못한다는 것에서부터 유래된 공포였다. 저 견고하고 굳건한 틀이 사람을 죽인다. 실재하는 누군가가 죽는다. 조망되지 않는 곳에서. 저 어두운 뒷골목 어딘가에서, 원색적인 네온이 범람한 거리에서, 어느 집 방구석에서, 등등.

희망이 가려진 세상에서조차 희망을 찾고 싶다고 한다면 지나친 환상을 품는 것일까. 룸펜의 발화가, 룸펜의 언어가 몰이해와 훼손 없이 세상에 기록되고 세상과 소통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면 이상에 매몰된 것일까.

 

단 한 문장이라도, 한 단어라도

거대하고 두꺼운 벽으로 주조된 세계에 오롯하게 새겨지는 날이 오기를.

*이 리뷰를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그저 죄송하고 감사드린다. 긴 아무말 대잔치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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