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은 사라진 아버지와 보도 블록 공사를 하는 아들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기름 냄새를 풍기는 주유소 직원이었다. 그는 100만원도 채 안 되는 월급을 가지고 레고를 사서 조립하는 데 몰두하곤 했다. 원래부터 레고에 집착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원래 건설 현장의 중장비를 다루는 일꾼이었고, 아내와 이혼한 후 건설 현장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짤리게 되었다. 그 후 주유소에서 일하게 되었고, 자기 방에 숨어 레고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수능 전날 홀연히 아버지가 주유소에서 주유 도중에 주유하던 차를 몰고 사라진 걸 알게 된다. 아버지의 행적을 따라가보니 아버지는 단종 예정이던 레고 모델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 레고 모델은 단층 아파트 모델로 40만원대로 꽤 비쌌다. 아들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그는 처음으로 외박을 나간 기억을 떠올린다. 외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에 아버지는 베란다 난간에 있었다. 거기서 아버지는 잉크로 그린 입처럼 미소 짓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아들 앞에서 그런 표정이었다. 다시 현재, 아들은 공사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서 들었던 50대 남자의 살인 사건을 떠올린다. 경찰에서 그런 사건은 없었다고 하지만, 아들은 그런 사건이 정말로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는 문득 사람들의 그림자로 어두워진 땅바닥을 보며 생각한다, 아버지가 사라진 후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의 주변에는 그림자가 머물고 있었다.
<블록>의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다. 사라진 아버지와 아버지를 찾는 아들의 이야기다. 왜 하필 아들은 보도 블록 공사에 유독 연연해할까 생각해보았다. 그는 아마도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 그랬던 것이 아닐까. 그가 아버지가 타고 떠난 차량의 차종을 궁금해하는 대목 때문에 그랬다. 보도 블록 공사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레고 조립에 몰두했던 아버지처럼, 보도 블록의 블록의 아귀를 맞추는 작업을 하면서, 아들도 아버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고 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아버지 입장에서 아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아버지는 아내와 이혼한 후 레고에 집착하기 시작한 인물이다. 그는 사실 아들은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아내가 떠난 날부터 그가 원하는 이상은 이미 현실에는 없었다. 그의 이상향은 레고의 세계에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잉크로 그린 입으로 항상 웃고 있고, 멋진 집에 살고, 행복한 가정이 있는, 그런 세상 말이다. 아들은 환상 속에서 그림자가 피규어가 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러니 아버지는 아마 살아있다면, 레고 피규어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야만 그 세상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테니까.
사실 우리는 모두 이상향 속에 살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이상향이란 신기루처럼 너무 쉽게 허물어지는 법이다. 작품 속에서처럼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떠나버려서, 가난해서, 친구가 없어서, 건강하지 못해서,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이상향을 잃은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현실을 이상향으로 만들려는 사람, 이상향을 포기한 사람, 현실에서 도망쳐 이상향으로 떠나는 사람. 세 번째 부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가족에게, 친구에게, 단순한 실종자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사실 단순 실종이 아니다. 그들은 이상향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 스스로 사라지기를 선택한 여행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