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사이에 과연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지는 도입부 공모(비평) 공모채택

대상작품: 0과 1사이의 수많은 세계 (작가: 노젓는 아이, 작품정보)
리뷰어: 알렉산더, 17년 3월, 조회 63

이 리뷰는 6화까지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재까지 나온 분량은 단지 도입부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플롯에 대한 리뷰는 아무래도 접어둘 수 밖에 없습니다. 반복되어 언급되는 냄새 자연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어, 숫자로 상징되는 영일시의 사회와 향후 대립각을 세울 것 같습니다만, 아직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도입부에서 느낀 솔직한 감상을 가볍게 주절거려 보겠습니다.

우선 도입부는 주인공 그린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느끼는 알 수 없는 시선에 대한 묘사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111이라는 여성과 이런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둘 사이에는 은은히 로맨스의 기운이 풍기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그린이 영일시에서 자연수를 부여받아 자연수 사람이 되면서 나타난 증상입니다.

영일시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정신을 계승하여 모든 것에 숫자를 붙입니다. 사실 자연수 사람이 35만 4천 5백명이 있다고 하는데 주인공에게 255라는 아이디가 부여된 것은 이상하긴 합니다. 그리고 만물은 수라고 했던 피타고라스 학파의 주장이 단순히 만물에 아무 번호나 붙이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닌데요. 255라는 숫자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그러다가 그의 일상에 어떤 녀석이 끼어들면서 무언가가 일어나려 합니다.

여기까지가 6화까지의 줄거리입니다. 세계관은 참신하고 도입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흥미롭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완전하게 몰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것은 ‘이질적 존재 대한 묘사가 간략하다는 점에서 기인한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존재를 접하게 되는데 그에 대한 정보가 모자라서 와닿지 않는 거죠.

예를 들면, ‘일백 거리’라는 중요해 보이는 지명이 제시되는데요. 그에 대한 묘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린은 어깨를 두드리며 새하얗게 빛나고 있는 일백 거리를 바라보았다. 흰색 건물, 흰색 거리와 차도. 눈으로 뒤덮힌듯 한 색 때문인지 오늘따라 쨍한 한낮의 태양 때문인지 일백 거리로 들어가는 사람들과 차들은 그 아른거리는 눈부심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이든 저 곳에 들어가면 거리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일백, 하나의 흰 빛이란 뜻이었나. 그린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말들을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며 걸어갔다.

일백거리를 들어가고 나갈 때 열린다는 개인 보안 게이트, 피타고라스의 문.

(중략)

대리석쯤이라도 되는 듯한 길 위에 그린의 왼쪽 발이 내려앉았을 때 피타고라스의 문이 나타났다. 마치 검은 색 눈동자와 같은.

이것이 일백 거리에 대한 묘사입니다. 하얗다는 것은 알겠지만, 저는 이 묘사에서 그 이상의 디테일한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차도는 몇차선인지. 좌우에 늘어선 건물은 어떤 재질이고 몇 층 높이인지, 폭과 길이는 대략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피타고라스의 문이라는 것은 일백거리의 차도 위에 있는 건지 인도 위에 있는 건지, 그냥 거리에 들어서는 데 왜 문이 필요한 건지, 피타고라스 문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지만, 위 묘사에는 이러한 디테일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이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묘사할 때는 좀 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독자는 이런 소설을 읽을 때면 작가가 상상해 낸 세상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하니까요.

5회에서는 그린이 발견한 생명체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그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비오는 밤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녀석에게 너무 추울 같았다. 이미 몸이 많이 젖어있었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런 빗줄기를 버텨내며 자신을 집으로 돌아가기는 힘들것 처럼 보였다. 손바닥 위로 들어올린 녀석의 몸에서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온기 섞인 떨림이 전해져 왔다.

병아리? 참새? 그린은 자신이 알고 있는 작은 몸집의 조류와 작은 생명을 맞추어 보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새에 대한 그린의 조예는 종잇장처럼 얇았다.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불쌍한 새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습니. 새는 많이 젖어 있고, 추워 보이, 온기 섞인 떨림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것이 전부입니다. 마치 모자이크된 영상처럼 어렴풋합니다. 이 새의 중요성에 비해 (물론 도입부만 보고 판단할 순 없지만, 일단 독자는 그린의 평범한 일상에 끼어든 이런 사건이 아무 의미 없다고 받아들이지는 않으니까요) 서술이 간략하다 보니, 묘사에 대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사실 그나마 서술된 ‘추울 것 같았다’나 ‘집으로 돌아가기는 힘들것 처럼 보였다’는 그린이 ‘직접 본 것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가 ‘보고 느낀 바를 설명’한 것입니다. 실제로 두번째 문단을 읽기 전까지는 이 생명이 ‘새’라는 사실조차 알 수 없어, 읽는 이 입장에서는 와 닿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떤 종의 새인지 설명이 어렵다는 것으로만 마무리됩니다. 다소 성의가 없는 느낌인데, 깃털 모양이나 색깔, 부리의 모양, 상처의 유무, 냄새 등 조류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도 ‘녀석’에 대해 묘사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아래 부분에서 독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측은한 마음은 접어둔다 하더라도 어쩐지 정감이 가는 모습을 그냥 두고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같았다.

위에서 설명한 생명체의 모습에 측은함이 아닌 정감을 일으키는 부분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불쌍하고 모자이크된, 무채색의 작은 새만 그려질 뿐입니다. 작가님의 머리 속에 떠오른정감 가는 귀여운 이미지를 전달받지 못해 안타깝습니다더군다나 그린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캐릭터입니다. 이런 사람이 미등록 동물의 사육을 금지하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데려갈 정도라면 납득할 만한 매력이나 정황이 묘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슷한 아쉬움이 5화 후반에 또 나옵니다.

“아아 여기까지 오느냐 힘들었어.”

그린은 오른쪽 신발은 벗고 왼쪽 신발은 발에 반쯤 걸친채로 집안을 쳐다보았다. 거실에 사람이 있었다.

(중략)

그린은 거실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 사람을 향해 말을 걸었다.

(중략)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자신의 집에 들어와 저렇게나 태연히 앉아있을 만한 사람, 논리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정보 관리국의 직원일 확률이 가장 높았다.

(중략)

의식하고 보니 관리국에서 일을 하기에는 너무 작아보였다.

얼굴이 모자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성인의 체구는 아니었다.

사람이 상대를 인식할 때 가장 먼저 체구부터 인식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침입자가 아이의 체구라는 것이 너무 늦게 제시됩니다. ‘거실에 사람이 있었다.’ 직후에, 그는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모자를 쓰고 어떤 신발을 신고 있는지, 머리카락 색이나 얼굴의 특색 중에 독자가 알아둬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의 정보가 왔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장이 잘 읽히지 않습니다. 너무 긴 것은 조금 더 끊어 썼으면 좋았을 것 같네요. 띄어쓰기가 잘 안 된 부분도 한 몫 하는 것 같고, 표현도 좀 더 다듬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좋은 점이 있을 지 상상하기는 어려웠지만 아버지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좋을 것 같은데 상원의원이라면 더할나위 없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문장은 아래와 같이 바꾸면 어떨까요.

구체적으로 어떤 좋은 점이 있을지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일단 아버지가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웠고, 게다가 상원의원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이 문장은 애초에 너무 뜬구름 같아서 어색합니다. ‘좋다’는 단어 자체가 추상적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 좋은 일인지 안 좋은 일인지는 가정폭력이 있는 집을 고려하면 선뜻 답하기 어렵구요. 앞부분의 경우, 바로 다음에 실제로 구체적으로 어떤 좋은 점이 있을지 상상하는 장면이 나와서 내용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보다 높은 몰입감을 위해 글 전반적으로 좀 더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위 여러가지 아쉬운 부분들을 말씀드리긴 했지만, 독창적인 세계관은 분명 흥미롭습니다. 상원 및 하원의 존재 등 여러 설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며 앞으로의 전개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눈동자를 느낀다는 주인공에게 어떤 비밀이 감추어져 있을지도 대단히 호기심을 유발합니다. 아직 도입부에 불과한 만큼, 이 신선한 세계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다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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