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우선 장편을 완결지으신 적사각님, 축하드립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환향>을 읽으면서 부분부분 제 생각을 기록해두었는데요, 그래서 오늘의 리뷰는 리뷰라기보단 저의 의견 전달에 가까운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당연히 제 개인적인 의견이고, 좋다 나쁘다를 따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니 편한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환향>을 완결까지 다 보았고, 그래서 전체적인 스토리를 어떤 식으로 풀어나갔는지에 초점을 두어 리뷰를 하려 합니다. 스포일러가 될만한 부분은 스포일러 처리를 해두었습니다.
원래는 전반적인 스토리나 인물 해석 등에 기초한 리뷰를 해볼까 했는데, 이런 리뷰는 소금달님이 너무 잘 써주셔서… 저는 서술 기법이라는 측면에 맞추어 의견을 드리겠습니다.
서술 기법은 크게 내러티브 기법과 장면 보여주기 기법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제가 10대 시절 슬레이어즈 팬픽 사이트에서 몸으로 구르며 터득한 것으로, 이론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저 주관적으로 분류한 카테고리일 뿐…
내러티브 기법은 누가 뭐뭐뭐를 했다. 이 문장에 이어…
상대는 다른 어떤 행동을 했다 / 뭐라고 말했다 / 그러자 ㅇㅇㅇ한 일이 일어났다
그 다음,
주인공은(혹은 어떤 인물은) ~~~하게 느꼈다 / 그것이 원인이 되어 또 다른 ㅁㅁㅁ가 일어났다
이런 식으로, 상황을 설명하듯 몇 문장 혹은 몇 문단 내로 죽 써내려가는 스타일이 내러티브 기법입니다.
예를 들면…
[ㅇㅇ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나가라고 외치면서. 주인공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억울해도 ㅇㅇ가 상급자인 이상 지시에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보다 못한 ☆☆가 ㅇㅇ를 제지했다.]
이런 식의 서술이 내러티브 기법입니다. 혹시 <자칼의 날>이라는 소설을 보셨는지요. 이 <자칼의 날>이 100% 내러티브 기법으로만 표현된 소설입니다.
반면 장면 보여주기 기법은, 설명이 아닌 묘사를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앞서 말한
[누가 뭐뭐뭐를 했다.]
이 문장에 이어
[상대는 다른 어떤 행동을 했다.] 가 아닌,
이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를 글로 옮겼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를 들면…
[“자네 이게 말이 되는 보고서인가? 당장 나가!”
주인공은 숨이 콱 막혔다. 활동비도 제대로 지급해주지 않아, 추가 인력 요청도 묵살해, 그런데 기한은 여전히 이달 말.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보고를 원한단 말인가?
“부장님, 최소한 사람이라도 몇 명 더 붙여 주셔야…”
“핑계 대지 말고 나가!”
울분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지만 상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억울하지만 상하관계가 엄격한 조직에 몸담고 있는 이상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옆에 있던 기획부 김부장이 손을 들며 나섰다.]
이런 식의 서술이 장면 보여주기 기법입니다. 즉석에서 써서 퀄리티가 영 별로인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내러티브식 기법, 장면 보여주기 기법 둘 다 나름의 특징이 있는 방식이기에 당연히 뭐가 더 낫거나 우월한 건 없고요. 작가님들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섞어가며 사용합니다. 대부분은 집중해서 보여주고 싶은 상황에서는 장면 보여주기 기법을 활용하고요, 덜 집중해도 되는 부분은 내러티브 기법을 활용합니다. 아마 다들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처리하실 것입니다.
다만 내러티브 기법은 ‘메인 플롯’의 카메라 시간축이 이동하고, 장면 보여주기 기법은 ‘메인 플롯’의 카메라 시간축이 특정 시간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이 시간축은 ‘서브 플롯’이 아닌, ‘메인 플롯’의 시간축임을 다시금 말씀드립니다.
그럼 내러티브 기법을 사용하면 전개가 빨라지고, 장면 보여주기 기법을 사용하면 전개가 느려지냐. 혹시 이렇게 물으신다면… 꼭 그런 건 아니고요. 굳이 전개 측면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아마도 메인/서브 플롯 각각의 전개 방식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장편소설은…
==============메 인 플 롯==============
서브 플롯 1 – 서브 플롯 2 – 서브 플롯 3 – 서브 플롯 4
장면1-장면2-장면1-장면2 – 장면1-장면2 – 장면1-장면2
이런 식의 구조를 갖추고 있지요. (도표의 칸이 어긋나는데 양해 부탁…)
작가는 독자를, 서브플롯 1, 2, 3의 스토리에 빠져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독자에겐 메인 플롯이 전개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가들을 가장 골머리 썩게 만드는 부분이 아마도… 바로 서브플롯 1에 해당되는 초반 구간, 즉 빌드업 구간일 것입니다.
특히나 빌드업 구간은 독자가 읽으면서 내 취향이다 아니다, 흥미가 느껴진다 아니다, 재미가 있다 없다를 본능적으로 판별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하죠.
작가도 머리가 아픕니다. 초반 부분에 이 정보도 줘야 하고, 저 설명도 해야 하고… 설명이 너무 과해지면 늘어지고, 그렇다고 너무 안 하면 독자가 이해를 못하고… 저도 늘 고생하는 부분입니다. ㅠㅠ 특히나 빠른 전개에 익숙해진 요즘 시대에는, 빌드업 구간의 속도를 얼마만큼 빠르게 해야 되냐로도 골머리를 앓으시죠 다들.
그래서 대부분, 빌드업 구간에선 정말 정말 꼭 필요한 필수적인 정보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뒤의 서브플롯에서 천천히 풀어나가는 방법을 택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빌드업이 너무 길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때 사용할 수 있는 요령이 바로 장면 보여주기 기법입니다.
소설에서는 독자에게 꼭 주어야 할 정보값이 있습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독자에게 플롯과 스토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주어져야 하는 정보입니다. 그리고 독자가 가장 집중하는 부분은 대사이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정보값이나 미스디렉션(추리소설 등에서 독자가 잘못된 결론을 내리도록 일부러 허위정보로 유도하는 장치)을 제공할 때에도 대사로 처리를 합니다.
그런데 초반 빌드업 구간에서 필수 정보를 줄 때 장면 보여주기 기법으로 처리를 하면, 메인 플롯의 카메라 시간축은 특정 시간대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독자는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인물 둘이서 주고받는 대화나 문답에 필수 정보를 넣어 대화를 진행시키면, 이때에도 희한하게 독자는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메인 플롯은 하나도 진행되지 않더라도…
작중에서는… 다른 분들도 댓글로 저와 비슷한 의견을 달아주셨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30화가 넘어가야 메인 플롯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확히는 27화에서 서브 플롯 1이 끝나고 30화에서 서브 플롯 2로 넘어가는 느낌이었지요. 특히 34화에서 이실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죽이면서, 그때부터 비로소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느낌이 강력하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정말 필연적으로 27화짜리의 서브 플롯 1(빌드업) 구간을 길게 잡아갈 수밖에 없다면, 고르고 골라 필수정보를 엄선한 후, 그것을 제공할 때에 장면 보여주기 기법으로 전개를 한다면… 앞부분이 좀 덜 길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 분량과는 상관없이 말이죠.
장편소설은 독자를 엔딩까지 ‘데리고 가는’ 글인 것 같습니다. 긴장을 줄 때는 주고, 풀어줄 때는 풀고, 웃어야 할 때는 웃게 하고, 슬퍼해야 할 때는 슬퍼하게 하고… 강약중강약 리듬도 잘 타야 하죠. 독자를 엔딩까지 무사히 데리고 가도록 하기 위해, 두 기법을 적절히 혼용하여 (실제로는 긴) 빌드업 구간을 짧게 느껴지도록 착각을 유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말은 쉬워도… 직접 해보면 어렵지요. 저도 매일매일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
리뷰가 길었습니다. 좋은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물 중 주인공 범수를 보며 우리네 인생 다 비슷하구나 하는 자조적인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를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씁니다. 감사합니다, 적사각님. 늘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