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의 제목은 작품 속 문장에서 가져왔습니다.
담담한 색채의 문장들속에서 저 글자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더군요. 제 눈에는 그랬습니다.
작가님께서 최근에 쓰신 장편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 작품을 끝까지 읽지는 못했는데(뒤늦게 후회가 사무치는군요.) 독서의 깊이가 얕은 제게 작가님의 작품들은 ‘책을 읽는다’라고 하는 행위에 대한 재미를 일깨워주시는 것 같아 곧 출간될 책에 대한 기대를 더욱 크게 가지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하늘위 끝모를 공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세상에 닥친 재앙과 그 재앙을 불러온 먼지만큼이나 미세하지만 큰 균열이 생긴 가족사와 함께 세심하고 따뜻한 문장으로 그려집니다.
작품에서 주인공과 아버지는 같은 듯 다른 이유로 우주와 사막을 꿈꿉니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외국을 떠돌던 주인공의 아버지는 사막에서 그가 동경하던 무언가를 발견하고 영혼 구석 어딘가에 있던 그 미지에 대한 갈망을 자식에게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것을 발현하는 방식이 왜 소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밝혀준 작은 불씨를 자식은 더 거대한 세상을 향한 발걸음에 쓸 횃불의 재료로 사용하게 되었으니 아버지에게는 더없는 흐뭇함으로 남았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이야기는 무겁고 쓸쓸한 분위기의 암담한 미래상입니다.
인터스텔라에서 보았던 숨쉴 공기가 없는 세상에 더해 그로 인한 질병에 대한 공포가 주인공의 어머니를 통해 굉장히 사실적으로 표현되어있어서 읽으면서 갑갑함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근미래의 아포칼립스를 그리는 이 작품의 문장들이 뭔가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일년에 30일정도밖에 볼 수 없었던 아버지에 대한 소회도, 온몸의 혈관이 막혀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제게는 사춘기 아이의 애교섞인 푸념처럼 보여서 미소가 절로 지어졌습니다.
이 작품과 비슷한 분위기의 글을 몇 편 읽어본 적이 있는데, 이전 글에서 보았던 막연하고 가늠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동경은 결국 공허함과 쓸쓸함으로 남았었지요.
이 글도 결국 황폐화된 지구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미지로 나서야하는 주인공의 막막한 발걸음으로 끝맺음되지만, 결말을 받아들이는 제 기분이 사뭇 달랐습니다.
문장과 단어들이 보기좋게 예쁘게 담겨있어서 그런 건지, 인물과 사건 하나하나에 작가님의 꼼꼼한 손길이 느껴져서인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글을 읽는 재미가 풍성한 소설이라고 해야겠네요.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쓰면 수험서나 참고서가 되듯이,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리고 약간의 여운과 푸근한 감동을 함께 넣었더니 멋진 SF소설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어렸을 적에 보았던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가 떠올랐습니다.
영화의 결말부에 주인공이 지구에 찾아온 외계인들을 따라 그들의 우주선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같이 본 제 친구는 왠지 그 장면이 무서웠다고 제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장면이 그리 슬퍼보이진 않았습니다. 물론 낯선 외계인들을 따라 그가 도착하게 될 곳이 어디의 어떤 별일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런 이유로 그 끝없는 미지를 바라보는 눈이 더 아름답게 빛나는게 아닐까요?
‘사막으로’는 미지의 세계를 꿈꾸던 어린 시절 제 모습을 떠올리게 해준 예쁘고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와 비슷한 감동이 느껴지는 소설이기에 그분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님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