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까다롭게 감상

대상작품: 이상현상 (작가: 김형준,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2일 전, 조회 11

* 7화까지의 리뷰입니다.

 

이상 현상. 평범하지 않은, 일상에서 어긋난 상황의 목격은 언제나 당혹스럽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이라면 이상 현상 앞에서 한 번쯤 주춤하게 된다. 당면한 상황이 좋은 쪽으로 흘러간다면 안도하고, 나쁜 쪽으로 전개된다면 더욱 큰 불안함에 잠길 뿐, 비일상적인 사건은 어떤 모양으로든 삶의 균열을 만든다.

여기, 원인 모를 사건이 벌어진 아파트가 있다. 지하주차장에서 알 수 없는 일이 생겨 경찰과 구경꾼이 잔뜩 모였다. 주차장이니 접촉사고인가, 싶다가도 분위기를 읽어 보자니 그냥 지나갈 만한 일은 아닌 듯하다. 그러다 소문이 돈다. 아무래도 사람이 사람을 물어뜯은 것 같다고. 금슬 좋은 부부로 유명했던 가정집. 아내가 남편을 물어뜯는 게 상식적인 일일까. 그집 아들도 죽었다는데. 흉흉한 소문이 몸집을 불려갈 무렵, 비슷한 사건이 또 일어난다.

여기저기서, 사방팔방에서 사람이 사람을 뜯는다. 심지어 나라 안팎으로, 전세계에서 비슷한 일이 줄지어 일어난다. 그들에게는 공통의 특징이 있으며, 사람들은 이제 그 부류의 공격성을 ‘현상’으로 분류하고 상황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상현상’이라는 장편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직 초반에 가까운 전개지만, 임산부가 상대를 물어 뜯는다는 점, 종교와 미신이 함께 등장하는, 아포칼립스 소설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흥미로운 시작이다. 7화만에 이상 현상이 전세계로 퍼져간 스케일에 비해 공간을 아파트 하나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공간의 대비를 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짧은 서두를 읽은 만큼, 앞으로의 진행 방향을 점치며 세 가지의 개선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이상 현상’ 속 문장은 가볍거나 빨리 읽히지 않는다. 한 문단이 오래 이어지고, 그에 따라 읽는 호흡 또한 길어진다. 이 때문에 불필요한 묘사가 길게 이어지면 조금 지루할 수 있다. 모든 긴 문단의 소설이 그렇지는 않지만, 웬만큼 깔끔하고 숙련된 문장이 아니라면, 독자들은 쉽게 지쳐버리곤 한다. 게다가 웹에 연재하기로 한 이상, 스크롤을 내리는 독자들이 다음 페이지에서 마주할 장면은 더욱 분명해야 한다. 어떤 소설이든, 없어도 되는 문장은 쓰지 않아야 하지만, 웹에 올리는 이야기는 그에 더해 ‘생동감’까지 있어야 한다. 하나의 문장이 그 다음 문장을 읽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런 흥미가 이 소설에 더해질 필요가 있다.

또한 이 장편의 도입부에는 전세계로 바르게 퍼져가는 이상 현상에 비해 ‘온라인’의 반응이 적게 반영되었다. 텔레비전이 한동안 작동하거나 하는 것을 보면, 소설 속 세계에서 휴대전화와 인터넷 또한 꽤 오래 제 기능을 유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이 휴대전화로 검색을 하거나 정보를 찾는 등의 장면이 드물다. 현대인들에게 스마트폰은 N번재 장기라고 불리곤 한다. 그만큼 온라인 소통이 활발한 시대에 ‘이상 현상’ 속 인물들은 마치 외부와의 소통이 전면 차단된 것처럼 인터넷 세상을 거의 들여다 보지 않는다. SNS나 인터넷 뉴스, 라이브 방송 등으로 상황을 생생히 중계하는 이들이 등장한다면 좀 더 현실감이 살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파트라는 장소성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장편은 ‘아파트’를 사건이 촉발되는 장소로 정했다. 그리고 등장인물을 아파트 주민으로 한정한다. 그러나 이런 설정과 달리, 서술자의 시점은, 마치 딴청을 피우는 것처럼 자주 외부로 돌아간다. 독자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장소와 배경을 필연적으로 궁금해한다.. 이 아파트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그들은 각각 어떤 캐릭터일까. 그러나 소설은 ‘현상’을 설명하기에 바쁘다. 그 현상 속에도 분명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층마다, 동마다. 호마다 있을 인생을 아직 궁금해하는 독자들을 두고, 서술자는 너무 빨리 훌쩍 외부로 눈을 돌려버린다. 사람이 사람을 죽을 만큼 물어뜯는 것은 매우 크고 자극적이며, 강렬한 사건이다. 그 사건에 동반되는 무성한 소문, 그리고 그 소문을 해석하는 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장편’이라고 생각한 이상, 작가는 독자들의 생각과 기대, 소설 속 많은 인물의 움직임과 속도에 민감해야 한다. 빠르게 질주하는 문장으로, 상황과 인물, 재미를 다 챙겨야한다. 웹 연재 장편이란 적극적으로 까다로워져야 하는 글쓰기다. 개별 인물의 특성과 사건의 나아갈 방향, ‘임산부의 살인(혹은 식인)’이라는 자극이 세계에 스며드는 속도를 명확히 정하고 이어간다면 충분한 시사점이 있을 이야기로 보인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궁금해지는 장편이다. 이후 또 다른 리뷰를 쓸 수 있을 만큼의 분량으로 길게 이어져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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