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 작품은 제목부터 어디선가 많이 들어보았다 싶은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구성을 보면 분명 어디선가 서너번은 보았던 것 같은 잔잔한(?) 진행을 보여주고요.
작가님의 다른 작품을 보면 어떤 신선한 발상이나 시도를 하시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캐릭터나 스토리, 어느 한 부분에 치중하시기보다는 전체적인 완성도가 뛰어난 글을 쓰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은 작가님의 작품중에서도 특히나 더 많은 클리셰가 등장합니다. 분명 어디선가 한번쯤 듣거나 보았던 이야기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후 4시에 읽는데도 뒷덜미가 서늘합니다.
원체 겁이 많은 본인이긴 하지만 이런 기분은 오랫만에 느껴보았습니다.
이거야말로 많은 호러물을 써보신 경험에서 나오는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야기자체는 분량도 길지 않고 1화를 읽으면 ‘이런 이야기겠구나’싶은 쉬운 구성입니다.
요즘 독자분들의 요구와 트렌드에 걸맞는 빠른 독서와 이해가 가능한 분량으로 작가님의 관록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이런 옴니버스식 구성을 선택하셨다면 이야기를 좀 더 입체적으로 만드셨으면 더 좋지않았을까 하는 작은 아쉬움은 있는데(등장인물들간의 관계를 좀 더 부각시켜주신다던가 아니면 인물들의 이야기가 끝난 후의 상황을 더 그리셨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독자 개인의 작은 바램이었다고 생각해주세요.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의 작품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저는 그의 작품들이 전에 없던 놀라운 시도나 발상을 보여주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보여주는 작은 행동들, 그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뭔가 대단한 것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수백편의 장, 단편들을 낼 수 있었을 겁니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괴담입니다. 한참 유행했던 도시괴담류의 이야기들이지요.
이미 본 것들 사이에서 불현듯 기억에 남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면 호러작가로서는 축복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 그런 것들이 보입니다.
졸업사진에서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자꾸 눈에 띄는 얼굴을 발견한 것처럼요.
이런 스타일의 작품은 매 화마다 같은 진행이 반복되는 글의 긴장감을 떨어뜨리지 않기위해 적절한 양념이 필요한데, 작가님은 매 화의 초반부에 등장인물들의 독백에 가까운 대화를 넣음으로서 불길한 이야기의 진행을 암시하면서 분위기 환기를 시키는 데도 성공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전작들을 보면 뭔가 찝찝하고 뒷맛이 씁쓸한 기운을 남기는 완성도 높은 호러물을 많이 쓰셨더군요.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님의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긴 하지만, 이 작품이 전작들과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전작들에서 보여주신 눈에 선히 보이는 듯한 장면의 묘사보다는 어떤 상황에서의 느낌을 강조하려고 하셨다는 겁니다.
어떤 끔찍한 장면의 묘사를 통해 머리속에 강렬하게 박히는 공포도 상당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기분이 어땠을 것 같아?’ 하며 슬쩍 던져주는 무서운 이야기들은 이야기를 잘 만드시는 작가님의 손에서 날카롭게 다듬어져서 현장감 넘치는 구어체 문장들을 타고 머리에 콱콱 박힙니다.
공포물을 쓰는 데 있어 구어체를 사용하는 건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는데(한 번 시도해보았다가 크게 실망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야기의 현장감과 점점 쌓여가는 긴장감을 살려주는 좋은 재료로 사용되고 있으니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이제 여름은 거의 지나간 듯 하지만, 최근 블록버스터급 공포영화는 겨울에 개봉하기도 하더군요.
호러엔 계절이 없습니다.
호러장인의 완성도 높은 무서운 이야기 감상하시면서 밤을 지새우시는 건 어떨까요?(불면유도는 아닙니다만..)
행복하게도 한두편이 아닌 열편이 넘는 무서운 이야기가 독자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