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사(秘事)라고 하면 보통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에 충격적인 반전이 있었다거나 하는 카더라통신같은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이 글은 역사서에 아주 잠깐 등장하는 코끼리에 대한 서술에 작가님의 따뜻한 감성을 더해서 담백한 곰국 한 사발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작품의 매력을 한두가지로 꼽기가 힘들 정도인데, 제 취향으로 본 최고의 매력은 인물들의 표현입니다.
이 글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짧은 분량속에서도 자신의 몫을 꿋꿋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시작은 성주들에게 치여 기를 못 펴고 사는 일본의 왕이죠. 지역군주들의 힘이 강한 전국시대 일본에서 힘이 없는 왕은 그야말로 뱀굴위에 둥지를 꾸린 어미새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태종은 또 어떻습니까. 왕위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주위의 불만들을 힘으로 찍어눌러야 했던 외롭고 불안한 왕이었지요.(이것은 제 사견으로 저와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가본적도 없는 타국에서 온 거대한 짐승은 자신의 처지를 상기시켜주는 떨어진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의 권위를 확인시키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얼떨결에 그 거대한 동물의 사육을 책임지게 된 만돌이는 당시 민초들의 정신상태(?)를 보여주는 이야기의 핵심인물이기도 하고 약간 평이하게 흘러갈 수도 있는 이야기의 재미를 끌어올려주는 최고의 캐릭터였습니다.
타의로 머나먼 타국을 유랑하게 된 코끼리와 그 코끼리때문에 졸지에 고향을 떠나 전국을 주유하게 되는 만돌이의 삶에는 그야말로 부평초와 같았던 백성들의 애환이 절절하게 느껴질 법도 하건만, 작가님은 그 유랑기를 특유의 글솜씨로 귀에 술술 들어가는 옛날이야기처럼 맛깔나게 풀어놓으셨습니다.
또 한명 제가 인상깊게 본 인물은 바로 이우인데 조선시대 양반의 모습을 마치 얼마전에 보고오신 것처럼 재미있게 풍자해놓으셔서 오랜만에 글을 읽다 크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고어물에 가까운 최후 또한 제 취향이었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오랜 시간을 버텨온 그들은 어이없는 사고로 이별을 하게 되는데, 어찌 보면 뻔해보이는 결말이 뇌리에 오래 남는 이유는 짧은 분량에 꾹꾹 채워담으신 글에 대한, 그리고 등장인물들에 대한 작가님의 애정이 듬뿍 느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글 속의 인물들은 작가의 애정을 먹으며 생기를 갖고 살아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한 줄을 채 못 채우고 역할을 마치는 인물 하나하나에도 인물의 색깔을 공들여 입혀놓으신 것처럼 정감이 있습니다.
작가님의 타고난 표현력일 수도 있으나 저는 짧은 글에도 많은 공을 들이신 작가님의 노력이 글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싶네요.
누구에게 물어본들 삶이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다는 대답을 듣기는 힘들 겁니다.
퍽퍽한 머릿속과 무거운 어깨를 끌고 출근하던 길에 이 글을 읽으며 ‘조선시대라고 뭐 달랐겠어?’하며 웃음을 짓게 해주신 작가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싶네요.
잔잔한 풍자와 가슴따뜻한 사람(과 동물)의 이야기가 있는 이 작품은 사이다가 펑펑 터지는 무협물만큼이나 제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준 재미있는 글이라 브릿G의 독자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