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가 주인공인 소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여태 별 호감을 못느껴서 읽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 인식에 변화를 가져온 소설이 “피어클리벤의 금화” 브릿G 최고 인기의 연재물을 읽으면서부터였지요. 지능이 있는 침착하고 용맹하고 힘센 고블린 전사가 예상 밖으로 꽤 취향이었거든요. 그가 주인공인 소설이라면 아무 편견 없이 읽을 수 있겠다 싶었죠.
제목에 대놓고 오크, 그리고 변호사가 붙으니 유권조 작가님의 글에도 또한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연재 편수가 7이라 아니다 싶으면 곧장 하차해도 괜찮겠다는 심정도 솔직히 있었고요. 시간이 금 같아 허투루 쓰기 싫잖아요. 그런데 이거 페이지를 열자마자 너무너무 취향인 거에요. 구부정하게 앉아도 뒤에 있는 문이 다 안보일 정도의 체구, 셔츠와 재킷 위에 검은 외투, 누군가의 눈엔 어색하고 누군가의 눈엔 어쩌면 지적으로 느껴질 안경을 쓴 채로 접견실로 들어온 건 국선 전담 변호사 다밀렉, 종족은 오크입니다. 그가 변호해야 되는 인물은 7살밖이 고블린 고르모프고요. 7살이라 할 때 우리가 능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혀짤배기 소리를 하고 노란 동복을 입은 채 등교하는 유치원생이지만요. 여기의 7살짜리 고블린은 한 집안의 가장에 청소부로 근무 중이며 시체를 목격한 후 경찰에 신고했다 살인 용의자로 몰려 체포된 상태입니다. 성장의 어마무시한 간극에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이야기를 쫓다 보니 아무래도 이 남자, 아니 이 고블린은 누명을 쓴 것 같아요.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는 이가 제출했다는 자백서라니. 눈치가 제로인 사람이 봐도 너무 명명백백해서 눈 감고 아웅이라 하기도 민망합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오호라! 오크 변호사가 고블린의 누명을 벗기며 사건이 전개되려는 건가봐! 두근두근, 흥미진진, 콩닥콩닥. 하지만 다밀렉은 고르모프의 억울한 이야기에 혼란을 느낄지언정 그의 무죄를 입증할 생각은 없는가봐요. 다른 변호인단은 그냥 지나치면서 오크 변호사에게만 시행되는 소지품 검사, 인간이 내는 요금의 몇 배를 지불해야 겨우겨우 탈 수 있는 마차, 오크 최초로 대학에 입학해 변호사가 되었지만 교내에서는 언제까지고 투명오크 취급.. 차별과 거부와 냉대가 속속들이 들이찬 현실에서 고작해야 청소부일 뿐인, 그것도 힘없는 이종족 고블린의 억울한 외침에 누가 귀를 기울이기나 할까요. 고작해야 오크일 뿐인 변호사가 진실을 밝혀낼 가능성은 또 몇 프로나 될까요? 진실을 말하면 누가 들어주기는 할까요? 정신을 혼몽케하는 치통을 핑계로 하숙하는 여관방에 숨듯이 파고드는 다밀렉의 좌절감 앞에 저는 어쩐지 숙연한 기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변호사가 되었지만 인간계에서 좌절 밖에 맛보지 못한 오크 변호사 다밀렉, 그를 가르치고 그를 변호사의 길로 이끈 스승 카엘로, 제국으로부터의 분리를 염원하는 오크 독립군의 우두머리 가힘마드. 이제 막 시작하는 소설에 벌써부터 긴장감이 너무 커 숨이 콱 막히는 기분이에요. 이런 기분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리뷰를 쓰는 독자에게 부디 부담 느끼지 않으시길 바라며 완결까지 힘내서 연재해주시길 작가님께 바라마지 않습니다. 화이팅!
* 소제목이 독수의 열매에요. 전 독수의 의미를 악독한 수단 정도로만 알고 있어서 그렇게 해석을 했는데 아무래도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검색하니 잎이 다 떨어진 나무라는 뜻도 있군요. 오크 변호사에서의 독수는 아무래도 후자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