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글에 리뷰를 쓰면서 특히 웹소설에서 제목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역시나 그렇습니다.
브랜디쉬는 과거 카세트 테이프를 볼펜에 빙빙돌려 감아가며 게임을 하던 시절에 즐겼던 JRPG의 이름입니다.
별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어려워서 제 안에 있던 흑염룡을 깨우곤 하던 녀석이었지요.
리뷰를 쓰는 지금도 제목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주인공은 거대한 흉기를 마구 휘두르는 바바리안 스타일의 초형귀는 아닙니다.(전세계적으로 히트했던 게임의 주인공 캐릭터가 그렇거든요. 몽둥이로 제우스신을 두드려패는…)
여기서 이 소설의 첫번째 매력을 말씀드려야겠군요.
굉장히 스타일리쉬합니다.
주인공 브렌힐트는 이름부터가 은발에 보라색눈동자를 가지고있는 가녀린 몸에 강인한 근육을 숨긴 여인일 거라고 생상력을 마구 가동하게 만듭니다.(이건 어떤 성적인 의미라기보다는 제가 재미있게 한 게임의 캐릭터가 그런 모습이라 그렇습니다.)
작가님은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흔들림없이 구도를 잡아주시기 때문에 조금만 집중하면 글의 전개에 훅 빠져들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글의 배경은 많은 분들이 좋아하실 갈아엎은 후의 근미래이고, 약간 스팀펑크의 분위기도 풍겨서 ‘어머 이건 꼭 웹툰이나 애니로 나와야 해.’라는 사심섞인 감탄사가 흘러나오게 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 어떤 게임의 눈가린 여자아이가 생각나는 매력철철 주인공에 근미래의 스팀펑크 배경이라면 말 다한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주인공이 시작부터 간지가 좔좔 흐르는 움직임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과거의 기억없이 몇 년 전부터 작은 마을에 살면서 멸망한 도시에 들어가 쓸만한 물건을 가져오는 ‘탐험가'(이 직업 또한 매력적입니다.)를 업으로 삼아 살고있는 브렌힐트는 언젠가부터 자신에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기괴한 새와 싸우기도 하고 거대한 공성병기급의 머신과 대적하기도 하면서 복잡다단한 자신의 과거의 실타래를 풀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가장 믿음직한 동반자인 엘루와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주인공을 괴롭히는 모리안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극의 흥미와 긴장을 더해주는 역할을 하지요.
그들은 과거 인간세상의 뛰어났던 과학기술의 집약체일까요?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엘루의 이야기에서 그들이 과거 세상의 멸망에 무언가 한몫한 것 같다는 의구심을 들게 하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기억을 어느정도 떠올렸다고 하는 엘루가 입을 다물고 있거든요.
이야기는 이제 시작인데 여기서 모든 걸 다 풀어놓고 시작할 수는 없지요. 아쉽지만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브랜디쉬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할 첫번째 실타래를 잘 풀어놓았다고 생각됩니다.
흥미를 끌만한 배경과 스토리, 등장인물들도 모두 각자의 개성과 이야기를 갖추고 있어 계속 이어질 후일담에 대한 기대도 생기게 됩니다.
특히 장편의 진행방식으로는 쉽지않은 1인칭시점을 능숙하게 사용하시는 작가님의 능력덕분에 몰입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개인적으로 약간 아쉬운 것은 중간중간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설명의 시간’입니다.
법황청의 재판 에피소드부터였나요. 이야기의 진행이 [사건 벌어짐- 어찌어찌 해결됨.- 자초지종 설명] 요런 식으로 진행이 되는데 사실 주인공 시점에서 긴박하게 진행되던 이야기의 한 화가 갑자기 설명으로 채워지니 약간 김이 빠지더라구요.
1인칭 시점에서는 사실 많은 설명이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은 작가가 보여주는 상황과 사건에 빠져들어서 몰입하는 재미가 1인칭 시점의 장점이라고 보는데 중간에 한번씩 맥이 끊기는 느낌이 들어요.
진행상황을 보면 이제부터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끌어가실 것 같은데 중간에 굳이 한번씩 쉼표를 넣으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글에는 자매라는 단어가 아주 많이많이 등장합니다만, 저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아직도 ‘자매’의 진정한 의미를 잘 이해 못하겠어요.
이런 단어사용이 잦았던 과거의 소설들을 떠올리며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제게 아직은 조금 어려운 의미인 것 같습니다.
이제 엘루와 브렌힐트가 진짜 여행을 떠나는 지점이니 이쯤에서 세계 곳곳에 있다는 ‘자매’의 의미와 그들이 왜 연결되어있는지, 어째서 자매들간의 관계가 꼬여버린 건지에 대한 설명을 조금씩 해주시리라 기대해보겠습니다.
이 작품에는 요즘 브릿G의 화두라고도 할 수 있는 ‘백합’의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저에게는 일반적인 BL만큼이나 다가서기 어려운 두 글자이고 사실 저도 모르게 의식적으로 피했던 적도 있는데, 브랜디쉬에서 등장하는 자매들의 사랑은 이상하게도 큰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지더군요.
작가님이 브렌힐트라는 캐릭터를 워낙 잘 만들어놓으신 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랜디쉬에서 주인공 브렌힐트는 ‘싸우는 여성’이지만 ‘여성’이라는 이미지는 머리속에 전혀 남아있지 않습니다.
여성주인공이 등장하는 헐리우드 액션영화를 볼 때 ‘여자가 저렇게 잘 싸우네.’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영화를 보지 않는 저로서는 어떤 젠더감수성이라는 복잡한 감정을 머리속에서 싹 비우고 글에 집중할 수 있는 브랜디쉬가 참 좋았습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여성이고 이야기의 중심축도 세상 곳곳에 있는 ‘자매’를 찾는 이야기가 될 것 같지만, 여성적인, 여성들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냥 과거의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사랑하는 동반자와 함께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나서는 모험담이죠.
멋진 캐릭터를 공장에서 찍어내듯 잘 만들어내시는 작가님이 다음에는 어떤 매력있는 케릭터를 뽑아내실 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브랜디쉬에 대해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주인공에 집중해서 보시면 AR게임기 부럽지않은 몰입감을 선사해줄 수 있는 괜찮은 작품이라는 겁니다.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가 될 지 알 수 없지만, 조금 이야기가 산으로 가면 어떻습니까.
우리 브렌이가 잘 마무리해줄 테니 걱정없이 따라가셔도 될 겁니다.(저도 모르게 애칭을 붙여버렸네요…)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