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라노벨이니 할리퀸로맨스니 하는 달달한 글들을 마구잡이로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제가 연애고자, 정확히 표현하면 연애를 글로 표현하지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적지않은 나이에 연애경험이 없다고 거짓부렁을 하기엔 살면서 부족한 제게 마음을 내어준 그녀들(둘도 분명히 복수니까요.)에게 미안한 지라 제 연애감성이 메말라있었다고 솔직히 인정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달달함이 차고 넘치는 많은 글을 읽었습니다만 역시 안되는 건 안된다는 걸 깨닫고 지금은 ‘야구를 못 한다고 팬이 될 자격도 없는 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맘 편히 로맨스를 즐기는 독자가 되었습니다.
방금도 ‘일반’ 카테고리에 있는 제목부터가 묘한 글을 한편 읽었습니다.
역시 소설에 제목이란 독자들에게 보이는 작품의 얼굴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예를 들어 웹툰이라면 표지에 있는 그림체가 맘에 들어서 볼 수도 있지만, 소설은 그야말로 작가의 경력이나 장르 취향 같은 걸 빼면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가 제목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제목에 끌려들어와서 이 글을 살짝 식힌 잔치국수를 단숨에 들이마시듯 읽었습니다.
내용에 대해서는 뭐라 설명드릴 것이 없습니다.
굉장히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고, 등장인물도 세명, 내용은 주요인물 두 사람의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 까마귀까지 넷이군요.
사실 저는 글을 볼 때 구성과 꽉 짜여진 틀에 집착하는 사람입니다만, 로맨스를 읽을 때만큼은 제 답답한 성격의 모난 부분이 부드럽게 다듬어지는 기분이 듭니다.
다른 글을 읽을 때 같았으면
1. 담당 교사는 어째서 펭귄인형탈 같은 걸 쓰고 등장하는가?
2. 고등학교인 것 같은데 학생들의 독서량과 지식수준은 왜 이리 높은가?
3. 담당교사와 주인공의 관계는 지나치게 가까운데(부모의 역할까지 대체하고 있습니다.) 글에선 내놓은 자식처럼 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4. 주인공의 채식은 이해가 되지만 까마귀는 대체 왜? 무엇을 위해 등장한 거지?
이런 것들을 혼자 고민하다 나가떨어지기 쉽상입니다만, 결론적으로 전 이 글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왜냐면, 아이스크림 가득 넣은 생딸기빙수같은 달콤함과 상큼함이 너무 좋더라구요.
현자들의 선문답같은 대화를 하면서도 대화 내용보다는 선배와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후배의 저돌적인 귀여움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고, 담당교사가 학생 둘만 놔두고 집에 가면 어떻고 까마귀가 종이를 질겅질겅 씹으면 또 어떤가 하는 마냥 뿌듯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또 이런 글에 나오는 주인공은 결국엔 못 이기는 척 하고 앞만 보고 돌진하는 후배의 마음을 받아주니 그걸 지켜보는 설레임이 또 너무 좋네요.
이 글은 약간 일본 풍의 애니메이션 색채를 가진 짧은 로맨스물 같습니다. (작가님은 일반에 넣으셨지만, 이 글은 분명 로맨스!!란 말입니다아아아)
항상 이런 글을 읽으면 금방 빨개지고 괜히 아닌척 하며 내딴엔 복잡하게 살았던 제 어린시절이 떠올라서 잠시 그때로 돌아가봅니다.
떠올려보려 해도 잘 되지않는데 이런 달달한 글을 읽을 땐 준비과정도 없이 바로 소환되는 걸 보면 로맨스를 쓰시는 작가님들은 과거소환을 시켜주는 마법가루를 글에 솔솔 뿌려놓으셨나 봅니다.
감사한 마음과 팬심 가득 담아 모자란 글솜씨에 리뷰를 남겨보았습니다.
더 많은 글 써주셔서 저 같은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달콤한 시간을 선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