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흡입력 있는 문장이라는 게 참 어렵다. 쓰기도 어렵지만, 읽으며 찾아내기도 어렵다. 청소기의 흡입력이야 와트(W)나 에어 와트(AW)와 같은 단위로 나타낼 수 있겠으나, 문장의 흡입력은 도대체 어떤 단위를 기준으로 삼고 따져야 하느냔 말이다. 수치로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은 강하고 아니고를 넘어서 있고 없고를 확신하기마저 어렵게 한다. 그러나 감히 확신해보기로 한다. 천선란 작가의 문장에는 흡입력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도 아주 대단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첫 문장을 시작하는 순간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 마지막 문장에 닿아서야 파드득 놀라며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흡입력 이외의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 행성이 지구보다 더 높은 중력을 가지고 있어서 눈물은 마음과 다르게 계속해서 떨어졌고 수건도 끝내 마르지 않았다.
국가와 인류의 역사가 개인의 역사로 침범하는 지점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SF도 그와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분야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대의와 인류, 구원, 생존, 우주와 행성 따위를 말하지만, 결국 그러한 상황과 변화 안에서 개개인의 역할은 무엇이고 이들은 어떻게 변화하며 어떠한 결정을 내리고 그것이 우리가 같은 상황에서 내릴 결정과 얼마나 다른가를 확인하고자 SF를 찾는 것 아니겠는가.
천선란 작가의 글은 늘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킨다. 사람의 이야기, 개인의 이야기에 대한 욕구. 많지 않은 등장인물로 거대한 상상을 말하고, 그 속에서 작은 개인들의 탄탄한 서사를 풀어나간다. 저 멀리 행성 92124의 몽환적인 아름다움과 그곳에서 인류의 희망, 그리고 나와 X라는 개인의 절망은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같은가. 당장 아파트 관리실 마이크를 켜고 온 세대가 들을 수 있도록 낭독하고 싶다는, 당장 시청 앞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이 아름다운 글을 읽어달라 1인 시위라도 하고 싶다는, 가슴에서 펑펑 터져나는 주접을 고상한 글로 적어내자니 답답할 지경이다. 온전히 글 자체로 행복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를 발견함에, 그의 시작점을 목격하고 있음에, 말할 수 없이 설레고 벅차다.
당신의 기준에서 나는 미달일지언정 나는 내 삶에서 단 한 번도 미달인 적 없었으므로, 이해하기를.
나는 글을 배운 사람도 아니고, 책을 많이 읽은 사람도 아니고, 하다못해 장르문학 마니아도 아니다. 그리하여 이 일개 독자는 이 글이 문학적으로, 혹은 장르문학적으로, 얼마나 잘 짜인 글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작가의 글이 이러한 일개 독자에게 어떠한 얼룩을 남겼다면, 글쎄, 주제넘은 말이지만 충분히 완벽에 가까운 글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더 많이 배워서, 더 멋진 리뷰를 쓰고 싶게 하는 글이란. 오늘도 일개 독자는 많은 얼룩과 감사로 끝맺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