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델을 위한 변론 공모(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정의란 무엇인가? (2319년 29판 13쇄) (작가: 렝고, 작품정보)
리뷰어: 잭와일드, 19년 5월, 조회 151

<정의란 무엇인가? (2319 29 13)>에서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은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 트롤리 딜레마는 브레이크가 고장 트롤리 (광차) 다섯 명의 인부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가운데 트롤리의 방향을 바꿀 경우 다섯 명의 인부 대신 명의 인부가 희생되는 상황을 제시하고, 만약 당신이 레일 변환기 앞에 있다면 윤리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묻는다.

살아가면서 트롤리 딜레마 목격자처럼 치명적인 선택에 직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실제로 트롤리 딜레마 트롤리에 집중한다면 현대의 기차에는 발전제동, 회생제동, 저항제동 다양한 형태의 제동장치와 첨단 보안장치들이 있고 이마저도 작동이 경우를 대비하여 탈선분리기까지 있어 애초에 딜레마 상황의 발생 여지는 거의 없다.

하지만, 본작에서 제시된 우주적 상황이나 자율주행과 AI 우리가 현실에서 트롤리 딜레마의 상황을 경험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또한, 트롤리 딜레마의 상황이 비현실적이고 현실에서 직면할 확률이 극히 낮다고 하더라도 트롤리 딜레마는 우리가 개인 혹은 공적 영역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고민해볼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본작 <정의란 무엇인가? (2319 29 13)> 읽으며, 느낀 소회를 간략히 언급해보고자 한다.

 

1. 샌델의 프레이밍 : 샌델은 공리주의를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으로 보았는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요약되는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를 질적 공리주의로 발전시킨 스튜어트 밀은 소수의 의견이 다수에 의해 묵살되는 것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보았다밀은 <자유론>에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인류가 가지 의견이라 하더라도 인류가 사람을 침묵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한다. 이유는 첫째, 다수가 무시하는 의견이 진리일 있다는 , 둘째, 다수의 의견이 진리라고 하더라도 의견의 논리를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대되는 의견과의 충돌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는 , 셋째, 다수와 소수의 의견이 나란히 진리를 공유하고 있는 경우가 있을 있다는 때문이다.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공리주의와 관련하여 트롤리 딜레마를 언급하고 있지만 자신이 공리주의를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하는 것으로 프레이밍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생각된다. 저자가 언급한델의 프레이밍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쾌락을 더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고통을 차감했을 결국 그것이 사회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라는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에 근거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앞서 언급하였듯이 양적 쾌락에서 나아가 질적 쾌락을 주장한 밀도 공리주의는 소수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였고, 샌델도 공리주의를 언급하면서 대중테러 목적으로 시한폭탄을 설치한 용의자나 용의자의 어린 딸을 붙잡아 고문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한지와 관련하여 공리주의 문제에서 간과할 없는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권리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또한, 샌델은 고속도로의 속도제한 문제와 관련하여 교통사고 사망자의 목숨 비용과 출퇴근 시간 절약으로 얻는 경제적 이익을 비교 분석한 사례를 두고 인간의 생명이 수치화가 가능한 것인지, 나아가 도덕적 문제를 쾌락과 고통으로 계량화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언급하였다. 결국, 샌델이 공리주의와 관련하여 트롤리 딜레마를 언급함으로써 대중이 공리주의의 의미를 오해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그것을 단순히델의 잘못된 프레이밍으로 치부하는것은 다소 지나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2. 트롤리 딜레마적 상황 구성상의 문제 

 <정의란 무엇인가? (2319 29 13)>에서 제시한 사례는 트롤리 딜레마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제시된 상황은 핵로켓이 미리내06 기지를 향해 발사된 상황에서 궤도 엘리베이터의 조작을 통해 핵로켓의 궤도를 수정하여 5명의 과학자를 살릴것인지, 아니면 상황을 그대로 방관하고 궤도 엘리베이터에 1명의 늙은 과학자 살릴것인지이다.

하지만 본작의 상황에는 트롤리 딜레마를 구성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고려되어 있지 않다. 바로 고독한 목격자의 개인적 영역에서의 도덕적 선택문제를 구성하기 위한 핵심 요소에 해당하는 , 바로시간이다.

전통적인 트롤리 딜레마 상황은 제동기가 고장난 폭주기관차처럼 전속력으로 인부들을 향해 달려드는 트롤리, 그리고 레일변환기 앞에선 고독한 개인을 가정한다. 개인에겐 주어진 찰나의 순간 안에 레일변환기를 작동시킬지 여부를 선택할 있는 권리일뿐 상황에 대해 숙려할시간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딜레마적 상황이란 주어진 선택지 무엇을 선택하든 난감해질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의 곤란한 상황을 가리키기 때문에 개인에게 주어진 선택을 위한시간 유무는 중요한 요소로 보이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트롤리 딜레마에서시간 가지는 의미는 다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시간 목격자를 고립시켜 개인의 도덕적 선택을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다. 목격자에게시간 주어진다면 문제적 상황을 공론화하여 개인적 영역에서의 도덕적 판단이 아닌 공적영역에서의 사회적 합의를 시도할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본작에서 목격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60이다. “60이라는 시간은 핵로켓을 격추 또는 이탈시켜 사건을 해결하기에 부족한 시간일수는 있어도 목격자가 개인적 영역에서의 선택문제를 공론화시키는데는 충분한 시간이다. 실제로 본작에서 목격자는 WR102에게 상황을 공유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상황을 알리지 않았는지는 의문이다. 하다 못해 사건종결후 목격자가 자신의 해임에 대해 항변하며 언급했던 핵로켓 격추 담당자를 포함해 누군가에게 연락을 시도하지 않은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누구라도 상황에 놓인다면 상황과 관련된 각종 이해관계자들과 상황을 공유하지 않을까? 더더군다나 업무에 투입된 신입이라면 상황을 보고하여 자신이 홀로 내린 결정이 야기할 결과에 대한 부담감을 덜고자 하지 않을까?결국 주인공이 해임된 이유는 그가 내린 선택 때문이 아니라 우주부 지구청을 포함한 관련 의사결정자들에게 상황을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3. 목격자의 반론과 WR102 태도

목격자의 항변논리는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것은 폭력이라는 것인데, 저자가 지적한델식 프레이밍 , 다수와 소수의 대결구도를 깨뜨리기에는 약해보였다. 차라리 독자들이 단순히 다수 소수의 대결구도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이나 개인의 권리, 쾌락과 고통의 측정 불가능함과 질적 가치 분류의 난해함 등을 생각해볼 있는 에피소드를 같이 엮었으면 어땠을지

,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던 WR102 태도였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 애초에 포기하고 방관자가 되고자 했던 사람은 WR102였다.

그래 핵폭탄을 로켓이 위에 있는 우주기지에 한시간 뒤면 도착해서 , 터져. 그래서? 누가 신경이나 써? 의미 없다고. 과학자 6명이 죽든, 600명이 죽든.“

하지만, 사건 후에 WR102의 태도는 다음과 같이 바뀐다.

그깟그깟 늙어서 쓸모 없어진 과학자 하나 살리려고… 5명을 희생해? 네가네가 궤도 엘리베이터만 제대로 조작했어도! 5명은 살고 영웅이 될수도 있었어!

물론 사건전에는 본인 자신이 사건과 관련한 어떠한 책임에서도 벗어나기 위해서 진의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사건 이후에야 본심을 드러낸 것일수 있다. 하지만 사건 자체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던 WR102가 목격자에게 궤도 엘리베이터의 존재를 알려준 점, 또 사건을 인지한 후에도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고 다시 숙면을 취한 건 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WR102는 목격자의 실질적 사수이고, 또 사건발생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말로 사건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트롤리 딜레마는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도덕적 판단과 관련하여 꾸준히 논의되어 왔다. 또한 현재를 넘어 AI와 자율주행 등 미래 혁신기술과 관련해서도 많이 논의되고 있다. 작품을 읽으며 공리주의와 마이클 센델의 주장 등 트롤리 딜레마와 관련된 윤리적 문제를 곰곰히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다. 작가가 설정한 2319년의 미래라는 시점과 목격자에게 부여한 “시간”을 활용하여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했다. 미래에서 중요시하는 가치는 현재와 다른 포인트라는 점과 미래의 기술력이 반영되어 트롤리 딜레마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이 제시하는 상황이라던지, 또 목격자가 주어진 “시간”을 활용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모습이라던지… 작품을 기반으로 홀로 공상하는 시간도 즐거웠다. 샌댈도 자신이 주장하는 공동체주의는 다수파주의가 아니라 합의에 의한 자발적 의무와 연대의무를 통한 공동체와 공동선의 회복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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