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여전히 아이돌이었다. 그러나 달랐다. 난해한 가사를 쓴다고 수준높은 음악이라는 법은 결코 없다. 그러나 (중략) 드디어, 혹은 생각보다 빠르게 음악적 주체성을 확립했다. (중략) 한 장의 음반이 그저 열 곡 남짓한 각기 다른 노래의 모음집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테마를 구축하는, 이른바 ‘콘셉트 앨범’concept album으로서 내용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 콘셉트 앨범의 주제는 앨범 타이틀인 ‘Myself’, 곧 자아에 대한 성찰이다…」
아이돌,
앨범,
그리고 myself.
키워드만 놓고 보면 최근 몇년간 급격히 화제가 된 그룹,
방탄소년단—이하 BTS를 설명하는 문구처럼 보일 법도 하다.
허나 저 글은 BTS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그는 대학가요제 출신 스타,
라디오 프로그램 DJ,
거침없는 독설가 논객,
락 밴드의 리더이며,
그리고 그 모두를 요약하는 단어, 마왕.
바로 신해철이다.1
음악가로서 신해철은 독특한 이력을 보였다. 인기스타가 되더니, 돌연 락 밴드 N.EX.T를 결성했다. 밴드 보컬이 인기를 끌면 자연스럽게 솔로 가수로 탈퇴하는 게 대부분인 마당에, 도리어 솔로 스타에서 밴드 리더로 역행한 것이다. 그는 ‘신해철로 활약’하기보다는 ‘N.EX.T라는 밴드로 활약’하는 것을 더욱 원했다. 역행은 이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음악이 디지털 싱글로 한곡 한곡 낱개로 소비되는 일이 대세가 된 마당에, 그는 고집스럽게 앨범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노력했다. 시대는 다른 모습으로 거듭나는데, 그 와중에 그는 밴드와 앨범이라는 과거의 형식을 지켜내려 했던 셈이다.
2016년 폭발적으로 저변을 넓히더니 2017, 2018, 2019년 현재에 이르러 팝 시장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파급력까지 보여주는 BTS는, 지금의 음악시장에선 보기 드물게 막강한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인터뷰 자리에서 종종 언급하는 말, 노래 가사와 전체적인 곡의 조화/배합이 앨범이라는 단위에 잘 들어맞는지를 항상 고민한다는 말이, 나이브한 차원으로 답하는 게 아니겠다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비록 N.EX.T처럼 세션이 구성된 전통적 밴드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룹으로 협업하는 보이밴드라는 점은, 물론 일견 끼워맞추는 소리 아니냐고 충분히 하실 법 하지만 퍽 공교롭다.
과연 신해철이 살아있었다면 BTS로 말미암은 현상에 무슨 말을 하였을까? 음악가로서 신해철은 앨범과 밴드를 고집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경직된 사고의 소유자는 아니었음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중후반 범람하던 댄스 뮤직의 립싱크 논쟁이 일었을 때 신해철은 많은 이의 예상을 뒤집고 댄스 뮤지션의 립싱크를 옹호하는 입장에 섰다. 그것은 그저 조악한 동료애가 아니었다. 춤이 중심이 되는 음악도 필요하다는 말이었다.」2
「올바른 음악의 태도는 정통적인 것과 새로움을 찾아다니는 조화야여 한다고 생각한다.」3
앨범과 밴드에 대한 신해철의 태도는, 과거의 형식에 대한 단순한 향수가 아니었다. 앨범이라는 형식이 콘셉트라는 테마를 가장 잘 지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밴드라는 형식이 각기 다른 역할을 맡은 뮤지션들 간의 협업으로 궁극적인 음악을 이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국악 사운드를 시도하고 테크노 음악을 접목시키는 등의 행보는 골수 로큰롤 매니아들에게 기회주의적/시류편승적 행보로 여겨졌으나, 이는 신해철이 다양한 음악적 시도에 거리낌 없는 개방적 인물이었다는 증거이다. 이 개방성은 언뜻 밴드와 앨범에 대한 고집과 안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음악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완성시킬 수 있다면 과거의 양식이든 요즘의 유행이든 가리지 않겠다’라는 분명한 목적 의식 하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 이 점을 생각하면, BTS가 랩, 보컬, 댄스를 보이밴드로 협업하고 앨범 컨셉에 완성도를 추구하고자 노력하는 면모에서 신해철이 보여준 태도—밴드라는 협업과 앨범이라는 콘셉트에 대한 태도를 떠올리는 게 아주 어색하진 않으리라.
어처구니 없게도 정작 리뷰 대상 작품 <퍼스널 부커>에 음악 이야기는 없다.
그런데 나는 왜 신해철과 BTS라는, 다소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은 두 음악가를 이야기했는가?
그것은 이 작품이 종이책이 소멸하고 모든 텍스트가 전자기록으로 유통되는 시대에 개인적으로 의뢰하는 고객들을 상대로 종이책을 제작하는 사람—퍼스널 부커(Personal Booker)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BTS의 앨범 판매량은 단지 그들의 팬덤이 그만큼 대규모에 높은 충성도를 보인다는 증거이지, 음악 산업에 앨범의 시대는 종말했으며, 따라서 BTS의 앨범 판매량은 앨범의 죽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결국 질문은 되돌아간다. 앨범의 의미가 종말을 고한 시대에, 앨범의 존재는 무슨 의의가 있는가?
이것을 <퍼스널 부커>와 연계지어, 이런 질문으로 바꿔보자.
종이책의 의미가 종말을 고한 시대에, 종이책의 존재는 무슨 의의가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작품의 핵심 테마와 절묘하게 연결된다. 그 핵심 테마라는 게 무엇인지, 따로 적지는 않겠다. 어쩔 수 없이 작품의 모든 내용을 다 까발려야하기 때문이다. 스포일러 정도가 아니라, 전체 설명 수준으로 넘어가 버리니까. 아무래도 지리하게 설명하며 구절 구절 잘라내어 맛 없게 나열하기보다는, 직접 읽어보시길 권하는 게 차라리 나을 듯하다.
사실 그래도 대략적인 분석, 그러니까 작품 줄거리는 설명하지 않되 내가 감상하고 분석한 바에 대한 언급 정도는 하고 싶었다. 그러나 리뷰 노트(브릿G에서 구매한 따끈따끈한 보라색 노트!)에 인물의 관계망을 그리고 몇몇 구절과 단락을 필사, 분석하면서, 아무래도 명쾌하게 정리하여 말하는 것은 어렵겠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든 생각 : 차라리 이 작품을 여러분이 읽으시고 어떤 감상이 드셨느냐고, 그것을 내가 여쭙는 게 낫지 않을까?
비록 300매에 가까운 분량이다보니 금방 읽을 글은 아니다. (브릿G에서 200매 혹은 그 이상의 중편은 어쩐지 쉽게 읽기도 여유부리며 읽기도 애매한 분량이다.) 촘촘하게 구성된 묘사 단락들이 다수 포진해 있어 가볍게 읽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진득하게 읽는다는 마음으로 본다면 어렵게 읽을 작품 또한 아니다.
<퍼스널 부커>는 SF 장르에 흔히 보이듯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의 역할 상당수를 휴머노이드가 대체했으며, 통합된 연결망으로 인간들 간의 행동 기록이 연결되어 있다. 여러 작품에서 익숙하게 보았듯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출발하며, 역시나 낯설지 않게 강력한 자본 기업이 등장한다.
그리고, 종이책이 사멸한 시대에 종이책을 제작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추적한다는 핵심과 더불어, 챕터마다 유명 작품의 단락을 인용하여 흡사 <모비딕>이 뚜렷하진 않지만 분명하게 독자를 장악하는 암중의 분위기를 자아내듯 비슷하게 암중의 분위기가 공기를 장악한다.
그리하여 작품을 읽으신, 읽으실, 분들께선 어떤 감상일지 여쭙고 싶다
—여러분에게 종이책은 무슨 의미입니까? 모든 텍스트가 전자기록으로 일원화 된 미래 사회가 아니더라도, 종이책 판매와 수요가 떨어지고 있다며 아우성인 게 하루이틀이 아닌 지금, 오픈 플랫폼에서 몇번의 클릭 혹은 몇번의 스크린 터치만으로 텍스트를 소비할 수 있는 지금, 종이책이 여러분에게 가지는 의의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종이책에 담겨 있는 텍스트—‘작품의 주인’은,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