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리뷰어의 주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미트 더 리얼’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고하고 읽어주세요.
2014년, 당시 인기리에 방영되던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특집 프로그램 하나를 준비하게 됩니다. 그것은 당시 프로그램 패널들이 아이디어를 낸 소재로 방송을 제작하는 기획전의 일환으로, 90년대를 주름잡았던 가수들이 나와 각자의 히트곡을 부르며 관객들의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 주 소재였죠. 제목은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 90년대 인기 쇼 프로그램의 제목인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이하 ‘토토즐’)’에서 따온 이름이었습니다. 기획전 당시 심사위원을 맡았던 PD들은 상당한 난색을 표했습니다. ‘토토가’의 초기 기획안이 경연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던 것도 문제였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들 중 연예인 생활을 접은 이들도 있을 것이라는 문제가 있었죠. 무엇보다 당시 ‘토토즐’은 한 화당 1억 이상의 높은 제작비가 들어갔습니다. 장기적으로 지원을 받고 시청률이 보장된 경우면 모를까, ‘토토가’는 모험에 가까운 시도에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보장 역시 없었죠. 그렇게 ‘토토가’는 흘러가는 기획들 중 하나로 잊혀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까운 미래, 황 노인은 양로원의 친구들과 함께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사업을 창업하기로 결심합니다. 근 미래에는 돼지를 도축하는 대신 ‘돼지고기 맛 고기’가 존재하는, 인공육이 기존 고기의 자리를 대신한 세상이죠. 젊은 시절에 꽤나 ‘날렸던’ 노인들은 일사천리로 창업을 준비합니다. 우려와 걱정은 존재했지만 그것이 그들을 막진 못했습니다. ‘실버 창업 지원 프로젝트’의 본선까지 올라갔지만 떨어지며 기회가 좌절되나 싶었지만 그들의 앞에 한성 축산의 백두솔 대표가 자금 지원을 약속하기까지 했습니다. 초반 예비비까지는 아니어도 부담이 줄어든 셈입니다. 이제 노인들은 7개월 후 있을 ‘고기 박람회’에 고기를 내기 위해 돼지를 키우기 시작합니다. ‘리얼축산’이라는 근사한 이름은 그들이 꿈꾸는 멋진 미래에 대한 설렘이었죠. 박람회에서 성공적인 성과만 거둔다면 그들이 꽃길만 걷는 것은 확정된 미래인 셈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탄탄대로만을 걷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토토가’와 ‘리얼축산’은 업종 자체가 다른 경우입니다. 거기에 ‘토토가’는 성공 여부가 불투명했고 ‘리얼축산’은 큰 문제가 없다면 성공할 수 있는 창창한 미래의 사업이었습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예상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본래 경연의 형식을 더하기 위해 제목에 또 다른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나는 가수다’ 를 차용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을 제외하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변모한 ‘토토가’는 90년대 복고 열풍을 일으키며 새로운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실시간 검색어는 물론 각종 음원차트는 당시 인기 있었던 가수들과 그들의 노래가 차지했죠. 방송이 끝난 이후 수많은 90년대 인기 가수들이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했으며 인기를 증명하듯 방송의 이름을 딴 순회공연까지 열렸습니다.
반대로 ‘리얼축산’은 암담했습니다. 돼지를 정성껏 키워 A시의 고기 박람회에 출범한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사업 지원을 약속했던 한성 축산의 대표는 뒤통수를 쳤으며, 결국 그들에게 남은 것은 배상해야 할 손해비용 과 수북하게 남은 ‘질기고 누린내가 심한’ 고기가 전부였죠. 황 노인의 가족들은 앞으로 그를 과거에서 못 벗어난 고지식한 노인이라 생각할 지도 모르고 어쩌면 양로원의 노인들은 다시 서로를 마주하지 않으려 들지도 모릅니다. 서로 다른 시작점과 서로 다른 결말. 두가지 사업은 왜 각자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일까요?
근본적으로 ‘토토가’와 ‘리얼축산’은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향수’와 ‘공감’ 입니다. ‘토토가’는 90년대 당시 인기 있던 가수들을 다시 무대 위로 불러모아 옛 세대에게는 향수를, 현 세대에게는 옛 세대와 공감할 수 있는 오작교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리얼축산’은 돼지고기 맛의 고기가 아닌 ‘진짜 고기’를 공급해 도축된 고기를 먹던 세대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진짜 고기’를 먹어보지 못한 세대에게 고기 맛에 대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한가지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바로 ‘대체품’ 존재의 여부죠.
‘토토가’는 앞서 이야기한 당시의 인기 프로그램 ‘토토즐’의 형식을 빌려온 프로그램입니다. 90년대 당시의 시대상은 특히나 9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이들에게 낯선 감성입니다. ‘토토즐’이 97년에 종영한 것을 고려하면 아무리 빨리 태어났다 쳐도 많아야 7~8살이었을 나이니 무언가 느낄 수 있는 상황도 아닌 셈입니다. 오히려 기성 세대만의 잔치로 끝날 수도 있었던 계획이었죠. 하지만 제작진은 영리한 수를 두었습니다. 청중에 (당시 기준 3~4살이었던)96년생 이상의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모집한 것은 물론 90년대 유행 패션을 재현해 입고 오는 관람객에게 앞자리 우선 배정권을 주는 등 관심을 끌 수 있는 다양한 내부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입니다. 거기에 아이돌 시장이 본격적으로 범람하기 이전 90년대의 감성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방송을 통해 향수를 느끼고 관심을 보이게 됩니다. 현 시대에서는 대체할 감성이 없는,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 만이 아는 감정이 동요한 것이죠. 결론적으로 프로그램은 큰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전세대를 아우르는 대 통합이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반대로 ‘리얼축산’은 완벽했던 계획과 달리 초반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합니다. 생물을 사육하는데 들어가는 자본과 요건은 적지 않은 부담을 요구합니다. 그것을 완벽하게 고려하지 않고 시작한 탓에 고기의 단가는 예상 납품 가격을 훌쩍 뛰어넘게 되죠. 거기다 그들이 계획한 내부 프로그램 역시 문제가 생깁니다. 그들은 ‘진짜 고기’를 먹어보지 못한 세대를 소비자층으로 끌어 들여야 한다는 과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 세대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진행한 프로그램인 ‘도축’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습니다. 눈 앞에서 동물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광경이 유쾌할 리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게 된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죠.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신 세대 이전에 타깃으로 잡은 세대는 바로 ‘진짜 고기’를 먹어 본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향수를 자극해서 최소한의 판매 루트를 뚫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그러나, 황 노인을 포함한 노인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들이 ‘진짜 고기’를 팔려는 시장에는 이미 그것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상품이 존재했습니다. 기존 상품보다 맛이 더 좋고 동물을 힘들여 도축하지 않아도 되고, 메탄가스 배출 역시 하지 않아 환경 오염 역시 막을 수 있는 ‘고기 맛 고기’가 바로 그것이죠. 관심을 끌지 못하는 프로그램, 향수를 느낄 수 없는 상품, 그리고 이미 제 기능을 충분히 하고 있는 대체품까지. ‘리얼축산’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는 노선인 셈이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무언가가 성공할 확률은 도박에 가깝습니다. 특히 창업 같은 모험은 잘못하면 빚더미에 나앉을 수 있는 위험한 도전에 속합니다. 하지만 그 리스크를 뚫고 성공한다면 세상은 성공한 이를 대단하다는 존경과 감탄의 눈길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토토가’가 성공 이후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지고 타 방송사에서까지 언급이 되었으며 뒤 이어 나온 후속 시즌에서 화제성 있는 소재를 끌어올 수 있었고 역시나 화제성이 유지되었던 것이 그러한 시선의 연장선이죠. 하지만 모두가 그러한 성공을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본전은 둘째 치고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접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리얼축산’의 도산 이후 남은 수북한 고깃덩어리들은 어쩌면 남은 것 없이 무너진 수많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