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축복받은 살인범의 고백 (작가: 한사람, 작품정보)
리뷰어: 코르닉스, 19년 4월, 조회 35

게으른 감상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최근에 브릿G에서 살인마를 소재로 하는 작가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중단편란은 살인마 단편이 상당히 많이 보이게 되었습니다. 살인마라는 소재가 취향이 아닌지라 전부는 읽지 못했고 몇몇 작품만 읽어봤는데 정말 다양한 살인마가 등장하더라고요.

그 중에서 제 눈에 띈 것은 <축복받은 살인범의 고백>이라는 소설이었습니다. 경찰관인 석해와 엑스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살인마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제목에서 말하는 살인범은 경찰서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엑스지만 석해도, 엑스를 석해에게 데려온 주영도, 경찰서에 있는 그 누구도 엑스가 사람을 죽였을 거라 믿지 않습니다. 그야 그 수법이 너무나 황당하니까요. 그저 상대가 죽기를 원한다면 상대가 일주일 내로 온갖 방법으로 죽습니다. <데스노트>가 생각나지만 그와는 결이 다릅니다. 적어도 <데스노트>에는 적어도 죽음에 명확한 인과관계가 표현되니까요. 하지만 엑스는 아닙니다. 인과관계가 지나치게 희박합니다. 작품을 읽는 누구나 석해가 옳다고 생각할 겁니다. 엑스의 논리는 너무 조악하니까요.

그렇기에 이야기는 살인이나 죽음보다는 엑스가 느꼈던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느꼈을감정에 집중됩니다. 이야기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감정은 석해가 말한 것처럼 죄의식입니다. 스스로의 죄를 견디지 못하고 남에게 벌을 받아서 죄를 없애고 싶은 거죠. 하지만 엑스가 죄의식을 견디지 못했다기엔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건 결국 자신이 저지른 죄가 아닙니다. 아무리 정신적으로 흔들렸다고 해도, 그리고 죄의식이 인간의 감정 중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 중 하나라 해도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죄의식을 부풀린 다른 감정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건 혐오, 그 중에서도 자기혐오라 생각합니다. 자기혐오는 스스로를 파괴하니까요.

엑스가 느꼈던 충격은 자신이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는 것보다는 스스로가 그렇게까지 타인을 증오했다는 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타인과 부딪히면서 엑스의 윤리관과 감정은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됩니다. TV에 나왔던 범죄자, 편의점 도둑, 소꿉친구의 연인, 직장의 상사. 그리고 가족아마 아버지에 가까워 보입니다에 이르기까지. 그런 사건이 몇 년의 간격을 두고 발생했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릅니다. K가 집을 나갔을 때처럼요. 하지만 우연하게도 극적인 사건이 너무 짧은 간격에 너무 많이 발생했습니다. 평생 자신이 쌓아온 가치관은 너무나 크게 부정당했습니다.

자신이 이렇게 쉽게 다른 사람을 싫어하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는지 충격을 받았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겁니다. K와의 만남은 그런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K를 생각보다 증오하지 않았다는 것과 K가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자신을 혐오했을테니까요. 죄의식과 자기혐오는 악순환을 일으켜 결국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감정 자체가 죄는 아니었음에도요. 산다는 것은 스스로를 용서한다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게 지나쳐서 타인에게 죄를 지었으면서 뻔뻔하게 구는 것도 말이 되지 않지만 적어도 요즘처럼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시대에서는 자신에게 조금은 관대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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