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얼마면 돼? 얼마면 현수랑 헤어질 수 있어?”
K드라마의 진부한 대사로부터 소설은 시작되지만 소설 속 상황은 독자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다음으로 오는 문장으로 K드라마의 변주가 시작된다.
‘이 전형적인 대사를 말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어머니가 아니라 약혼녀였다.’
그러니까 저 대사는 현수의 어머니가 아닌 현수의 약혼 관계를 가진 또 다른 여자, 그러니까 삼각관계를 이루는 또 다른 꼭지점이란 이야기다. 그리고 사실 이 소설의 인물은 모두 네 명이기 때문에 삼각이 아닌 사각관계다. 주인공인 ‘나’는 잡다한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는 반면, 자신을 좋아한다는 현수는 대단한 부자고 또 다른 남자 ‘진성’은 수 많은 ‘팬’을 끌고 다니는 인기인이다. ‘나’는 자신이 그런 이들에게 왜 이런 애정을 받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단지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에서 비롯되었을 거라고 짐작한다(‘걔 나 얼굴 보고 좋아하는거야’).
그리고 ‘나’는 이런 두 남자의 애정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수의 약혼자인 지원이 진성에 대해 캐묻자 ‘나’는 뻔뻔하게 양다리를 시인하면서 ‘지들이 알아서 달라붙었’다고 말한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신데렐라 스토리를 기반하는 K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들의 근거 없는 애정에 대한 농담이다. 신데렐라를 사랑하는 남자들의 근거는 예의 신데렐라가 연예인이기에 응당 가지는 아름다운 외모 밖에 없으니까.
당연하지만 작중 인물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지원은, 외모 뿐만 아니라 돈도 많은 재벌집 자재인 자신이 주인공에게 경쟁이 밀린다는 걸 납득할 수 없기 때문에 주인공이 등장하는 자리마다 나타나며 투닥거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그림은 이렇게 된다. 다른 한쪽에서 주인공을 중심으로 현수와 진성, 두 남자를 끼고 K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나’와 지원의 또 다른 소설, K드라마의 스핀오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에 대해 처연하지만 역시나 불가해하게 느끼며 서슴없이 ‘막장 드라마’라고 표현한다. 이런 표현은 작중 ‘나’가 세계를 보는 관점이기도 하지만 글자 그대로 작품 내 사건과 요소들을 K드라마에서 빌려오고 있다는 의미기도하다.
특히나 도드라지는 것은 대화들이다. K드라마 대사들을 그대로 인용이라도 한듯, 두 사람의 합이 잘 맞고 선명한 리듬을 드러내는 대화는 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K드라마와 겹쳐보이도록 만들어 매끄럽게 읽히도록한다.
이런 대화를 중심으로 ‘나’는 자신을 사사건건 못살게 구는 지원을 물리치고 이야기를 스핀오프가 아닌 드라마의 중심으로 옮기려고 한다.
지원과 사이가 멀어지자 나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정말 무난하게 흘러’간다. 스핀오프는 사라지고 ‘나’의 삶은 K드라마의 해피엔딩으로 향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K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상투적인 이야기에 만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런 불가해한 이야기속 인물들의 사랑을 그대로 받는 것은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에 굴복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는걸 알아차린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두 남자가 아니라 매번 자신을 찾아와 귀찮게 굴었던 지원에 대한 감정을 자각하는 것이다.
작품은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K드라마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스핀오프로 진입한다. 수 많은 K드라마가 보여주었던 이성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본작에서 드러나는 동성애는 퀴어 픽션이 아닌 백합 서사에 가깝다. 성소수자가 내적으로 겪을 수 있는 종류의 갈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해서 퀴어 픽션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두 남자를 낀 사각관계에서 동성간의 연애 가능성은, 상투성에 기반한 K드라마들이 발견해내지 못했지만 응당 존재했어야할 서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뉘앙스는 팬픽션의 그것과 어느정도 일치하기도 한다. 이것은 팬픽션이 원작의 존재하지 않는 서사를 메꿔주어 세계관을 견고하게 만드는 작업과도 유사해보인다.
유학을 떠나려는 지원에 대해 알게 된 ‘나’는 급하게 공항으로 가 ‘지원’에게 떠나지 말기를 종용한다. 몇 번이나 분절되어 어렵게 꺼내어지는 그 말들은 작중 좀처럼 드러나지 않던 ‘나’의 감정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 말들은 ‘나’가 상투성으로부터의 거절을 고하고, K드라마 서사가 지향하는 거대한 흐름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신데렐라 스토리, 사각관계, 이성애와 같은 서사는 TV를 매체로 하는 드라마가 지향하고 있는 다수의 목표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선택은 우리 세대의 가장 거대한 서사 K드라마 앞에서 작고 왜소한 단편 소설의 모습으로 저항한다.
이렇게 팬픽션은 자신만의 힘으로 주류에 삽입되고 스핀오프는 이야기의 곁가지가 아닌 중심에 선다. ‘스핀오프’는 지금까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어쩌면 외면하고 있었던 이야기로 나아간다. ‘나’는 거대한 이야기에 그저 휩쓸리는 존재가 아닌, 진짜 주인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