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을 통한 자아의 구성 공모(감상)

대상작품: 림보(LIMBO) (작가: 슬픈거북이, 작품정보)
리뷰어: 냉동쌀, 2시간 전, 조회 5

강물은 종아리를 때리지만 짠내가 나지 않는다. 바다처럼 보이지만 강이라고 단정함으로써 예고된 이 소설의 전체 구조는, 보이는 것과 규정되는 것 사이의 간극, 그리고 그 간극을 메우는 인간의 판단을 중심으로 합니다. 이 소설은 바로 그 판단이 막 생성되려는 경계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소설 속 배경이 되는 공간은 그다지 명확하게 제시되지는 않습니다. 언어는 있지만 기억은 없고, 형상은 있지만 의미는 없죠. 이때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처한 장소가 어디인지가 아니라, 주인공이 아직 ‘누구’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소설 초반의 백색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정체성이 생성되기 직전의 상태, 말하자면 존재의 밑그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드러나기 직전의 밑그림처럼 창백했다’는 문장은 세계의 묘사이면서 동시에 자아의 묘사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공이 나타나 주인공에게 동전을 건넵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요구할 뿐입니다. 질문 대신 행위를 요구하는 이 장면은 이 소설이 ‘설명’의 서사가 아니라 ‘선택’의 서사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특히 여섯 번만 던지면 다 알게 된다는 말은 답을 약속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답이 아니라 구조를 제시하는 말에 가깝습니다. 여섯 번이라는 횟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세계를 읽는 방식의 틀, 즉 좌표를 만드는 장치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사공의 말을 따라 동전을 던지는 순간, ‘나’는 생겨납니다. 이는 존재가 먼저 있고 선택이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택이 존재를 만들어낸다는 역전된 질서를 보여준다. 자유를 선고받은 인간이 다양한 상황에서의 선택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는 사르트르의 사상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정체성은 기억이나 과거가 아니라, 하나의 결단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점이 여기서 드러나게 됩니다.

사공에게 카론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장면 역시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이름을 붙인다는 행위는 단순한 호명이 아니라 관계의 형성으로, 그전까지 사공은 세계의 일부였지만, 이름이 붙는 순간 주인공과 관계하는 하나의 대상이 됩니다. 즉 이 소설은 세계가 반드시 외부의 규칙에 의해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호명이라는 언어적 행위만으로도 좌표가 생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동전이라는 장치를 통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동전은 앞면과 뒷면으로 이루어진 이진 구조입니다. 그러나 이 이진 구조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가 됩니다. 여섯 번이라는 반복은 존재의 좌표를 완성하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따라서 동전을 던진다는 행위는 단순한 우연적인 선택이 아니라 세계와 자신을 동시에 생성하는 의식에 가까운 행위로 읽힙니다.

카론이라는 인물 역시 스틱스 강을 건너게 해주는 단순한 안내자가 아닙니다. 그는 답을 주지 않고, 질문을 미루고, 판단을 유예하자고 합니다. 이 유예는 존재의 확립을 지연시키는 것이 아니라, 질문의 가능성을 지속시키는 구조입니다. 판단을 미루는 동안 존재는 계속 흔들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낳게 됩니다. 원전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을 지키던 카론은, 이 소설에서는 오히려 자아의 확립을 역설하는 산파로 묘사되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반복적으로 느끼게 되는 기시감이라는 감각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은 과거의 회상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인공이 느끼는 기시감은 어떠한 존재가 이미 어떠한 구조 속에 놓여 있다는 감각에 가까울 것입니다. 즉 주인공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완전히 처음인 상태도 아닙니다. 이 모순된 감각은 존재가 항상 이미 어떤 이야기 속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특히 세 번째 동전 이후 ‘천지인이 갖추어졌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세계가 완성되는 과정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선택 속에서 구성된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공간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나’가 변했을지도 모른다는 문장은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변화는 언제나 인식의 변화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이죠.

소설의 후반부로 가면 카론은 이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허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논리입니다. 이유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존재를 규정하는 조건이 되는 순간, 주인공은 더는 이유를 찾는 방식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죠. 그래서 마지막 선택은 필연적으로 동전을 던지는 행위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결단으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주인공은 동전을 물에 던짐으로써 그 결단을 드러냅니다. 여섯 번의 구조를 완성하는 대신, 구조 자체를 거부하는 선택. 이 선택을 통해 처음으로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등장시킵니다. 흥미로운 점은 자유의지가 설명으로 등장하지 않고 행위로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자유의지는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실행되는 것이라는 점이 은유적으로, 그러나 강하게 역설됩니다.

카론과 림보, 그리고 시간과 공간이 동시에 휘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세계의 붕괴라기보다 세계의 재구성입니다. 좌표를 완성하는 대신 좌표의 바깥으로 나아가는 선택. 이 선택은 세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다시 시작하는 방식입니다.

결국 이 소설은 존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묻는 이야기입니다. 이름, 선택, 질문, 유예, 그리고 거부라는 여러 단계 속에서 ‘나’라는 자아는 조금씩 형성되어, 마지막에 이르러 그 자아조차 버려질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체성을 만드는 방식 자체를 질문하는 이야기로 남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소설은 선택 이전의 존재가 아니라, 선택 이후의 존재로 독자를 조용히 이동시킵니다.

정체성이 어떻게 생성되고 또 거부되는지를 사유하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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