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를 기억한다: 나는 인스머스를 기억한다 비평

대상작품: 나는 해를 기억한다 (작가: 이상근 마태오, 작품정보)
리뷰어: 창궁, 3시간 전, 조회 13

이 소설이 어떤 이야기냐고 제게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인스머스로 출발해서 바이오하자드로 끝맺는 이야기

라고요.

 

장르에 대한 얘기를 조금 해보자면, 저는 이 단편을 ‘코즈믹호러’ 태그를 검색하던 중에 발견하게 되어 읽게 됐습니다. 음, 그러니까 생물학적 재난이라든지, 음모론 같은 태그는 정말로 다 읽기 전까진 인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읽었을 때 그 시작은 굉장히 인스머스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립된 환경, 폐쇄적인 사람들, ‘사람’이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문제가 있는 외형, 기이한 행동, 그리고 교회(딱 봐도 정상적인 교회는 아니죠, 네)까지. 물론 침착하게 보면 코즈믹호러에 꽂힐 게 아니라 생물학적 재난에 좀 더 초점을 맞춰 봐야 합니다만, 어쨌든 그렇게 읽었었단 얘기입니다.

무엇보다 본 작품은 서사의 본론을 바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버지니아주의 엘크 크릭 카운티의 정경, 그리고 그 안의 세밀한 풍경, 그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행태까지 공들여 묘사한 다음에야 비로소 본론이라고 할 수 있는 루스와 토미를 만나 이야기의 진전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묘사들을 조금 뜯어보자면, 자연의 냄새 대신 나오는 쇠 비린 냄새, 역한 기분, 10월의 풍성함은 찾아볼 수 없고, ‘묘비처럼’이라는 비유, 기록에조차 남지 않은 작은 마을, 극단적으로 햇빛을 막아놓은 환경, 낮에 침묵하고 밤에 활동하는 주민들의 ‘적응된’ 행태들……

작가가 마을의 전경(全景)을 묘사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엘크 크릭 카운티가 어떤 분위기이고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건, 초반부 묘사가 훌륭한 대유법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묘한 마을에 도착한다면 누구라도 이성과 합리를 손쉽게 신뢰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곳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건 이성과 합리 뿐이겠죠. 유감스럽게도.)

그 이후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토미의 병(이라 불러야 한다면)을 비롯한 마을의 상황을 조심스레 지켜보며 정보를 쌓아가던 케이트 강은 의도치 않게 습격을 받아 마을 사람에게 팔을 물리게 되고, 그 자신 역시 점점 마을 사람들처럼 햇빛을 피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어떻게든 이 일의 진상을 알리려고 하지만, 그녀의 의지로는 역부족이었죠. 그러나 적어도 그녀는 자신의 최후만큼은 스스로 정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닙니다. 번호로 분류되는 각 에피소드 사이에는 짤막한 문서들이 등장합니다. 그 문서들은 감정이 실리지 않은(혹은 배제된) 매우 건조한 보고서들로서, 점차 사건의 윤곽(배후)을 드러내는 역할을 맡음과 동시에 케이트 강이 신뢰하고자 했던 이성과 합리가 얼마나 ‘절차적으로 무용’하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역할을 맡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방식(그러니까 인스머스의 그림자 같은)의 코즈믹호러가 아니란 걸 깨달은 건 케이트가 물렸을 때부터였는데, 사실 이때부터 결말은 사실상 예고된 셈입니다. 호러 소설 중반부에서,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서 감염된 주인공이 극적으로 백신이나 항체로 살아난다는 극적 전개는 아무래도 무리수일 테니까요.

작품은 물린 시점에서 결말까지 쭉 내달리기보다는, 작품의 관람 포인트를 바꿔버립니다. 전반부가 ‘감염된 마을의 정경과 현황’에 초점을 맞췄다면, 케이트가 팔을 물린 이후는 ‘감염된 사람은 어떤 상황에 놓이는지’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그러니까 이는 바꿔 말해 ‘마을의 모습’이라는 결과를 먼저 내어놓고, ‘케이트의 감염 과정’을 통해 결과에 대한 마땅한 설명(원인)을 제공하는 식입니다.

그리고 이 방식은 썩 나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음, 제 취향은 좀 더 내밀한 ‘코즈믹호러’에 맞춰져 있었지만, 신체가 변질되고 마땅히 누리던 것들이 박탈되며 자신의 의지가 아닌 것으로부터의 충동을 받는 것은 바디호러로서도 훌륭한 소재니까요.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문체가 호들갑을 떨기보다는 마치 덤덤하게 사실을 기술하고 있기에, 오히려 그것을 독해하는 독자로 하여금 끔찍한 상상력을 자극하게 됩니다.

케이트의 결말은 독자의 감정을 끝까지 구렁텅이에 처박는 대신(…) 자비로운 손길로서 희망을 주는 작가의 배려라고 생각했습니다. 취향으로 따지면 싫어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제가 기대한 방향은 아니었어요. 하하.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몇 있다고 하면,

1. 취재하러 갔는데 사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감염 사진만 첨부했어도 더 확인해야 한단 답신이 돌아왔을까 싶기도 하고, 사진에 대한 언급이 작중에 클리닉 말고 언급이 없다가 USB에 가서야 갑자기 등장해서 다소 인위적인 배치라고 느껴졌습니다)

2. “마지막 다의 꼬리가 아래로 길게 처졌다.”라는 서술의 아쉬움(이름도 보고서에선 알파벳으로 표기하고 중간에 JOEL의 L을 서술 문장에도 다뤘으면서 여기선 sun의 n이 아니라 다인 거는 오류라고 불러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3. 뱀파이어는 언급하면서 정작 좀비의 언급은 없다는 점(너무 노골적으로 좀비이기 때문에 좀비를 배제한 걸까요? 차라리 좀비의 실존이라는 상황을 제시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햇빛을 피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저는 일단 묘사에서 뱀파이어보단 좀비를 더 많이 떠올렸고, 좀비와 더 유사점을 많이 느꼈습니다)

4. 마지막으로 가서 케이트의 결말이 좀 더 희망과 감성에 차기보단 끝까지 건조하게 ‘나는 해를 기억한다’라고 했으면 어떨까 싶은 점

정도가 있습니다. 근데 4번은 진짜 독자로서 개인 취향에 의한 아쉬움입니다(…)

코즈믹호러로서 읽었다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다른 호러 수작을 읽게 되니 이것 또한 인연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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