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대상 범죄, 그리고 자신의 내면아이와 화해하지 못한 사람들 감상

대상작품: 당신의 아이와 화해하는 법 (작가: 백수광부,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1시간 전, 조회 10

[줄거리]

 

[신영채라는 인물]

 

[조수는 로봇이어야만 했는가]

아발론(잠시 왜 하필 이름이 아발론인지까지도 파고들어야 하나 싶긴 했지만 패스)이라는 로봇이 등장함으로써, 이곳은 일제강점기의 ‘경성’ 자체를 가리키지 않게 된다. 일제강점기라는 과거와 근미래의 서울, 현실과 비현실을 교차하여 어떤 가상의 ‘경성’이라는 도시를 만든다.

아발론은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로봇’이다. 아발론은 AI가 고장 난 불량 로봇이라고 불리지만, 실은 가장 인간적이고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다. 주인을 비난하고, 혼자 김 군을 찾아 나서고, 결국 고철이 되어 발견된다.

인간 조수였다면 이런 행동은 의리나 아이에 대한 측은지심 등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로봇이기 때문에 프로그래밍을 거스르면서까지 움직였다는 말이 되고, 그게 기계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역설로 전달된다.

또한 폐기된 고철로 발견되는 아발론의 모습에서, 만약 아발론이 인간 조수였다면 그 죽음은 잘못하면 이 소설이 아이에 대한 주제가 아니라 조수에 대한 복수나 슬픔, 범인 추리로 빠져버리게 된다. 하지만 로봇이기 때문에 히데오는 하드보일드의 주인공 답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네게 검을 가르칠 수 있는 로봇은 단 하나지”라는 한 마디로 아발론에 대한 많은 것을 독자에게 전달하게 된다.

 

[경성과 숭례문, 그리고 시대의 은유]

“불타 없어진, 한 때 예를 숭상했다는 건물의 잔해”는 2008년 숭례문 화재를 암시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것을 통해서도 이 ‘경성’이라는 곳이 일제시대의 경성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또한 ‘예(禮)’를 숭상하던 건물이 불탔다는 것은, 도덕,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가 무너진 세계를 상징한다. 히데오의 스승에 대한 서술을 보면, 스승은 바로 그 무너진 예의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다.

경성이라는 공간 자체도 마찬가지다. 근미래와 식민지 시대가 겹쳐진듯한 이 가상의 도시는 혼란과 이중성, 위선 덩어리 자체다.

 

[‘아이가 싫다’는 말의 진짜 의미]

히데오가 반복하는 “나는 아이가 싫다”는 독백은, 소설을 읽으며 처음엔 그냥 흔하게 애들을 싫어하는 까탈스러운 아저씨 캐릭터인 걸로 보인다.

 

[아쉬운 부분]

 

[마지막 문장의 결말]

“그리고 한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누구일까. 히데오가 새로 거둔 구두닦이 소년일 수도 있다. 혹은 아직 ‘아이였던 시절’의 기억을 온전히 놓지 못한 주인공 히데오 자신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소설의 제목은 이 마지막 장면과 연결된다. 어쩌면 아이와의 화해란 외부의 누군가가 아닌, 자기 안의 상처 입은 어린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히데오는 의뢰를 완수했지만, 정작 가장 오래 기다리는 의뢰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자기자신과 온전히 화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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