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라자’에 관하여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드래곤 라자 (작가: 이영도 출판, 작품정보)
리뷰어: 살라만더, 23년 11월, 조회 91

드래곤 라자에 관하여

 

  1. 우선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에 앞서 우리 모두 알고 가야 할 이해가 있다. 바로 프로이트. 누군가는 언제적 사람이냐며 너무 낡았다고 이야기 할지도 모르겠고, 누군가는 신경심리학 운운하며 인간 이해의 최전선에 있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쓴 년도를 생각해 우리는 낡았다는 의견도 버리고, 인간 이해의 최전선의 시각도 좀 버리도록 하자. 그냥 사람이 모두 다 프로이트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가정하자. 아니 이영도의 작품에 나온 모든 것들이 프로이트적으로 이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우리 같이 이해하자. 그러면 우리는 드래곤 라자를 전혀 다르게 읽을 수 있다. 아니 이영도의 작품을 모두 다 전혀 다르게 읽을 수 있다.

* 그리고 나는 이 글에서는 정신분석용어를 최대한 피하도록 하겠다. 우선 나도 잘 모르거니와 우리 모두 비평이라도 편하게 읽을 수 있어야 할 테니. 그래도 이 비평이 충분히 재미있으리라 생각한다.

 

  1. 작품의 초반부는 후치네 일행이 블랙 드래곤에게 쫓겨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닌가? 자의적으로 떠났었나?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작가의 묘사에 따르면 그저 자연재해인 그런 존재.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그런 존재. 이 존재는 50년만에 깨어나 영지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던 모두에게 피해를 끼친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변하고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이 모든 것이 드래곤 때문이라며 원망한다. 이에 우리의 주인공 후치는 자신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다른 동료들과 10만셀을 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아니.. 블랙드래곤에 의해 떠나게 되었다. 후치네 일행은 자의적으로 떠난것일까? 후치의 모험담이 재미있게 읽히더라도 후치는 절대 자의적으로 떠난게 아니다. 떠밀려 보내졌다. 그렇게 후치의 마법의 가을이 시작된다. – 프로이트적으로 말하자면.. 무의식이 신경증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의식들이 밀려나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 해결의 과정에서는 온갖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정말로 판타지다.
  2. 라자는 무엇인가? – 이 글을 읽는 독자 모두는 라자Raja’가 무엇인지 안다. 드래곤과 인간을 연결하는 존재. 드래곤은 원래 인간과 말을 하지 않지만.. 어쩌고.. 저쩌고.. 선문답도 아니지만.. 그래도 다시 물어야 한다. 그래서 ‘라자Raja’가 무엇이란 말인가? 소설내의 묘사를 빌리자면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존재, 드래곤과 서로 계약을 맺고 말을 걸 수 있는 관계가 시작되는 존재. 나에게는 상담자내담자 관계가 떠오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이드(나의 원초적인 욕구, 무의식) 과 에고(나의 현재의 욕구, 할 수 있는 것)을 연결시켜주는 상담가 혹은 superego에 가까워 보인다. ‘드래곤아~ 드래곤아~ 그러지 마~ 이거 해줘~ 이거 좋은 일이야~’ 라자가 달래면 들어주는 드래곤이라니.. 어쩜 이리 귀여운지.. 그러나 잊지 말자. 상담자가 겨우겨우 달래가며 부탁을 하는 ‘무의식’이다. 드래곤은 사납다. ‘무의식’도 사납다.
  3. 후치 일행은 아니 우리는 프로이트적인 여행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 후치일행은 이 여행을 통해 자신들이 바라는 것들을 얻게 된다. 영웅적 왕 길시언의 죽음으로 샌슨 퍼시발은 영웅으로, 칼 핸던트는 현자로.. 본인의 원하는 바대로 각성하게 된다. 그렇다면 후치는? 후치의 이야기는 좀 나중에 하자.(이루릴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이루릴은 그냥 이루릴이다. 자신의 욕구를 자신이 제일 잘 안다. 자신의 욕구를 모르는 것은 인간뿐이다.) 프로이트는 원시 시대의 아버지는 신의 원형이었다라고 적었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는 누가 신의 원형이 되었는가? 드래곤 로드?  내 생각은 그렇다. 모두 드래곤 로드를 두려워 한다. 마치 원시시대의 아버지처럼 절대 거역할 수 없는 그런 아버지. 그러나 프로이트의 이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러한 신의 원형이 우리 안에서 신경증이나 강박을 일으키고 그것을 극복하고 극복한 사람이 다시 아버지 즉 신의 원형이 되는 그 과정이 우리 인류가 반복해서 해 온 역사가 아니냐고 주장한다. 그 과정은 드래곤 라자에서는 루트에리노 대왕이 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대왕 아니 인간은 바로 그 대마법사 핸드레이크의 도움을 받아드래곤 로드아니 아버지를 극복했다. 그리고 극복된 아버지드래곤로드 는 자애롭게 인류에게 ‘Raja’라는 선물을 주었다. (이 선물의 은유는 이후 작품에서 새 콰르텟, 아니 새 saga에서 각 종족에게 주는 선물로 변주된다.) 프로이트는 우리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극복을 주었다. 후치는 이 이야기의 끝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가? 아.. 그 이야기를 하기 전 타이번은 누구인가?
  4. 핸드레이크는 누구인가?  소설의 마지막에서 대마법사 핸드레이크는 다시 등장한다. 인류를 드래곤 로드에게서 구원한 신경증적인 아버지에게서 구원한. 그런 영웅적인 인물. 아 그런데 한 번 더 이름을 바꿔 주어야 할 것 같다. 그의 다른 이름은 프로이트였다.(핸드레이크에서 프로이트 이름에서 이름으로 가는 11 대응함수가 있을거 같은데.. 못찾겠다. 설마 풋로이트 -> 핸드레이크 는 아니겠지?) 사실상 루트에리노를 이끌고 드래곤 로드를 거의 혼자서격파한 핸드레이크 아니 프로이트는 블랙드래곤에게 인간의 곁에.. 남아서 인간을 이해 하라고 주문한다. 아니면  아니 인간이 블랙드래곤을 이해할 수 있게 기다리라고 주문한다. 원래 이 무의식의 이해 세계에 한 번 들어온 사람은 다른 세계에 관심을 잘 가지지 않는다.. 10서클 대마법에 도전하거나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탐구할 뿐 그렇게 핸드레이크는 블랙드래곤에게 요구한다. 아직 ‘무의식’을 우리 마음대로 이끌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 ..그러나 후치의 선택은 다르다. 후치는 여행을 종료했다.
  5. 후치는 누구인가?어머니를 그리워할 때가 있는 우리의 후치.(나도 어머니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런 후치가 말하는 종료가 의미하는 것은 명확하다. 더 이상 탐색하지 않겠다. 라는 뜻이다. 무엇을 탐색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여기서 후치는 바로 프로이트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 더 이상 탐색하지 않겠다. 나는 여기서 종료이다. 나는 내가 왜 제미니를 좋아하는지.. 초쟁이인지.. 무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엄마는 어땠는지…’아빠는 어땠는지그리고.. ‘나의 왕.. 영웅적 왕과 같은.. . 어쩌고 같은 것들자신의 무의식을 더 탐색하는 데 성공할지.. ‘실패할지 따지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여행종료한다. 그렇게 블랙드래곤(무의식)이해되지 않고 떠났다. 누구도 이 블랙드래곤이 무얼 원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독자들 중 그 누구도 이 블랙드래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낙심할 필요 없다. 원래 그런드래곤이다. 아니. 원래 이해되지 않은 무의식이 그렇다. ‘이해되지 않고 떠났기에.. 나중에 인류의 의식이 저지를 추악한 일들이 다시 벌어질때면.. 블랙드래곤이 후치네 일행을 밀어냈듯이.. 그렇게 인류에게 신경증적인 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와.. 다시 블랙드래곤(무의식)을 이해하기를 요구할 것이다. 이 주인공은.. 그런 주인공이다. 정말로 소박하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데 관심이 있는게 아니라 그냥 우리 주변에서 이 소박한 슬픔과 아픔이 끝나기를 바라는.. 그런 주인공이다. – 그렇게 후치의  ‘마법의가을’은 끝난다.
  6. 영원의 숲? – 나는 단수가 아니다.-프로이트 상담은 쉽고 재미난 경험인가?프로이트적인 상담에서 상담가는 내담자에게 조각난 자신의 기억을 맞출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현재 보이는 모습은 과거의 여러 익혔던 혹은 경험했던 것들이 지금 나타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의 경우에는 어렸을 때 동생을 지키고자 했던 그러나 지키기 못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내 아이의 안전에 좀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내 동생은 잘 살아있다. 걱정마시라.) 이러한 상담의 장면은 소설에서는 영의 숲에서 개인이 여러 개인들로 분열되는 묘사로 나타난다. 거기서 숙련된 상담가의 스킬로 혹은 잘 정제된 자기 자신으로 다시 통합된 인격으로 잘 모이면 긍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 개인의 경험상 숙련되지 못한 상담가를 만나거나 내담자가 자신의 개별적인 생각에 너무 깊숙하게 빠지는 경우 쉬운 말로 미칠 수 있다.(나는 보지 못했다. 듣기만 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넥슨은 미쳤다.
  7. 결말.. 우리는 라자가 필요한가? – 왜 드래곤로드는 300년의 시간 동안만 라자를 허락했는가? 프로이트는 누구나 스스로 자신의 정신분석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 그러나 현대 분석가들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문학비평이다! 정신분석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정신분석을 하려면 최소한 좌절을 견딜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기에 이 등장인물들은 그 고생을 한 듯 하다. 우리의 자애로운 드래곤로드는 300년의 시간 정도만 있으면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이 모두를 사랑하는 그런 상태가 될 것으로 생각했기에 300년의 시간정도만 라자를 허락했던것이 아닐까? 그러나 인간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정신분석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좌절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극도의 죽음의 공포 후치가 겪었던 그런 좌절의 공포..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보게 될 정도의 그런 죽음의 공포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로드는 300년의 시간동안 라자를 주었지만.. 결국 블랙드래곤과 대화를 한 것은 죽음을 넘어선 후치 뿐이었다. 그리고 후치는 이해하지 않고 드래곤을 보내주었다. 300년은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기에 너무 짧다. 어디서 본거 같지 않은가? 그렇다.. 이 장면은 바로 피를마시는새에서 또다시 변주된다. 작가 이영도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새 콰르텟을 새 saga를 쓰러 갈 시간입니다.

 

왜 이 리뷰를 적었을까요? 오늘 아침에 밖을 보니 서리가 내렸습니다. 그냥 저의 ‘마법의 가을’이 끝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옥에서도 꽃을 피울 누군가가 오늘도 저기 어딘가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리뷰를 적었습니다. 내 아이디는 crazysala 당신의 작품을 읽고 아이디를 만들었고 나의 모든걸 미친 불의 정령처럼 다 태우고 돌아왔습니다. 직업은 물에다가 독을 타는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교사입니다.) 이 모든 개소리를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더 많은 부분에 관해 제 해석을 적는건 더 많은 이해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거 같아 적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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