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노상 하는 MMORPG 게임에서, NPC는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정해진 자리에서 정해진 대사를 하고, 정해진 아이템을 건네며 플레이어를 도와주는 든든한 친구죠. 그러나 그렇게 플레이어를 지원해주면서, 정작 스스로는 어디로도 가지 않고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합니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러한 NPC의 시선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시선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시선인지도 모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NPC입니다. 기본 장비, 늘 같은 말과 같은 식사, 반복되는 하루를 허위허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는 플레이어가 되어보기를 꿈꾸지만 그럴 수 없음에 한탄할 뿐입니다. 그 이유는 스스로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하릴없이 쉬고 있는 우리 모습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삶의 관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익숙해진 각본 안에 자신을 고정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만나는 이가 qufaud72라는 플레이어입니다. qufaud72는 주인공이 으레 만나 왔던 이들과는 다른, 상당히 독특한 인물입니다. 화려한 장비도 없고, 직업도 없으며, 목적도 불분명합니다. 그의 가장 큰 특징은 ‘설명되지 않음’이겠네요. 이 점은 qufaud72의 특징을 넘어 소설 전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아무런 설명도 없는 qufaud72는, 다른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이 갖는 목표 대신 ‘관계의 가능성’을 주인공에게 제시합니다.
일반적으로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와 NPC가 가지는 관계는 플레이에서 NPC로 향하는 일방향입니다. 플레이어는 정보와 보상을 얻기 위해 NPC에 접근하고, NPC는 그에 맞는 정보와 보상을 제공하죠. 그러나 qufaud72와 주인공의 관계는 그 방향이 반대입니다. NPC가 질문을 하고, qufaud72는 반응합니다. 물론 NPC가 플레이어에게 제공하는 것처럼 자세한 정보를 주지는 않습니다. 오로지 초성만을 통해 제한적인 정보를 줄 뿐입니다. 그러한 일방적인 질문과 대답에서, 주인공은 처음으로 자신의 질문을 스스로 돌아볼 시간을 갖습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돌아본 순간, NPC는 마침내 npc72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아이템 셔틀, 퀘스트 주는 애, 이러한 타인의 필요에 의해 부여된 이름이 아닌, 비록 NPC에 숫자를 더한 단순한 이름이나마 자신만의 것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주인공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을 의미합니다. 부여된 역할에서, 스스로 규정한 존재로 말입니다.
배경과 역할로 작동하는 주인공이 능동적인 플레이어로 NPC입니다 재규정한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수동적으로 관계하던 이가 능동적인 실존으로 도약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 장면은 운동하는 실존으로서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일상인이 스스로를 얼마나 배경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있는지, 그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성찰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요? 자신의 대한 스스로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흔히 생각하는 철학자의 전형처럼 골방에 틀어박혀 기나긴 사색에 빠져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흔히 가질 수 있는 이런 편견과는 달리, 오히려 타인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사상가가 더 많았습니다. 그 상호작용은 qufaud72의 등장처럼 이뤄질 수 있습니다.
qufaud72는 주인공에게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 플레이어입니다. 사실 플레이어라는 것도 주인공의 시각에서 본 모습일 뿐, 시스템의 오류로 탄생한, NPC의 위치를 임의로 바꿔버리는 어떤 버그 같은 존재라고 해도 작중 내용상 모순은 없습니다.
그런 정체불명의 qufaud72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고, 그저 가자고만 말합니다. 이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요청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둘 사이의 관계를 시작하자는 권유이기도 합니다. 상당히 배려가 넘치는 권유라 할 수 있죠. qufaud72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시작할 기회를 줄 뿐, 어딘가로 가라고 직접 안내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배경으로 존재하던, 외부로부터 부여받은 역할을 수행하는 NPC에 qufaud72가 또 다른 목적을 부여해봤자, 결국 NPC에 또 하나의 역할을 부여하는 모순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순을 일으키는 대신, qufaud72는 주인공에게 최소한의 장비만을 건넨 후 그를 세상으로 밀어넣습니다.
이는 그가 주인공의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납니다. ㅇㅇ, ㄴㄴ, ㄱㄱ, ㅋㅋ 같은 초성체는 그들이 게임 속 인물임을 상기시키는 역할뿐 아니라, qufaud72가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신의 의도를 스스로 짐작게 하는 산파와도 같은 기능을 합니다. 따라서 그의 초성체는 대답 회피, 관계의 단절이 아닌, 오히려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성을 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qufaud72 또한 일방적인 구원자가 아닌, 본인 스스로도 타인에게 구원받은 존재라는 암시를 남기는 것입니다. 작중 그는 어떠한 직업도 가지지 않은 것으로 묘사됩니다. 전사, 마법사 같은 게임 속 직업뿐만 아니라, 변호사, 보험설계사 등, 현실의 직업까지 거론해가며 그의 무직업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주인공처럼 qufaud72 또한 외부에서 부여된 어떠한 역할로 여겨져 왔으며, 그로부터 벗어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암시합니다. 어떤 직업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기도 하는데, 어쩌면 그가 역할이 아닌 관계를 통해 작용하는 존재라는 복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아무런 설명도 없는 qufaud72의 덕분에, 주인공은 방향을 찾고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얻어낸 성찰이었지만, qufaud72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겠죠. 이것을 타인의 도움을 통한 주체적인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아무리 개인적인 성장이라도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이룩하기 어렵습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기꺼이 타인을 도와야 한다는 당위에 도달합니다. 이러나저러나,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니까요.
현대인의 건조한 삶을 성찰하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