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매나 되는 긴 내용이었지만 한 번에 읽어내려간 것 같습니다.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한 번 읽어보았는데, 밑밥이 상당히 연하지만 치밀하게 깔려있었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를 미리 하고 들어가자면, 이 소설은 두 번 읽히기 위해 쓰인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글에서는 의도적으로 독자에게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소녀뿐입니다. 방호복을 입은 이들의 모든 행동은 적대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간혹 먹을 것을 소녀에게 직접 먹이려 하거나 그녀의 몸을 만지려 했다.
온갖 장난감과 맛있는간식거리는 그 교류의 산물이었다.
우리는 이 문장을 처음 읽으면서 너무나 당연하게도 방호복 이면의 교활함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말을 알고 나면 이 모든 것들이 서글프게 보입니다.
한 번만 더 깊게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충분히 이상함을 눈치 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소설에서는 소녀를 거의 뭐 뒤틀린 어미 급으로 묘사하는데, 실험목적도 아니고 그저 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눈치 첼 수 없었고, 이는 제가 근래에 본 가장 완벽한 미스디렉션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책과 장난감을 넣어주는 부분역시 그렇습니다. 방호복은, 아니 부모는 생각했을 겁니다. 희망이 있다고. 인지를 되찾을 여지가 있다고. 하지만 작가가 고립시킨 작은 방 안에서 우리는 두렵습니다.
영상물이 등장하는 부분은 2회차 플레이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상이 등장하는 순서는 다시보면 꽤 노골적이었습니다. 아무런 지식 없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자연환경에서 아동용 애니메이션, 그 내용은 점차 심화되어 뉴스에까지 이르릅니다. 네, 뉴스. 앞서 말했듯 ‘2회차 플레이의 꽃’ 입니다.
작품의 반전이 갑작스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프롤로그가 끝났을 뿐이니까요. 본편을 보려면 키보드의 Home 키를 눌러보세요.
일드 기묘한 이야기 바이러스 편과 비슷하다면 비슷한 내용이지만, 훨씬 더 풍부한 밑밥으로 곱씹어볼 재미를 잘 살린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이 소녀의 시야에서 쓰였기 때문에 우리는 이 소설을 마치고도 그 세상에 대해 정확히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 검은 물질의 정체는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 오히려 이런 부분이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결론이라고 내릴게 뭐 더 있을까요? 작품은 잘 써졌고, 리뷰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미 제목에 다 써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