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존재, 그리고 무력함 공모(비평)

대상작품: 러브크래프트 전집 (작가: 러브크래프트, 작품정보)
리뷰어: 개미핥기, 17년 2월, 조회 78

아이들은 어둠을 무서워한다. 그것이 낯선 장소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 사는 집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낮 동안에 멀쩡히 돌아다니던 거실의 긴 복도, 밝을 때는 기꺼이 숨어 들어가 숨바꼭질을 하던 침대 밑, 문이 열려만 있다면 아무런 감정도 일지 않는 벽장 안도 어둠이 내리면 온갖 공포스런 상상력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아마 어둠 속에서는 무엇이 존재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무지야말로 공포의 근원이며, 세상의 온갖 존재들 중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오늘 처음 만나는 미지의 존재일 것이다.

러브크래프트가 만드는 공포스러운 존재는 이 무지로 몸을 감싸고 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나 저기에서 분명히 다가오고 있는 존재. 풍문만 흉흉히 오가다가 마침내 바닷속에서 머리를 내민 괴물. 극도의 공포심으로 미쳐버린 사람의 횡설수설하는 증언으로밖에 접할 수 없는 기현상. 왜곡된 정보와 불안 속의 상상은 공포를 더욱 부풀리며, 공포의 정점에서 미지의 존재를 결국 만나면 공포심은 무력감으로 전환된다. 인간의 능력은 압도적인 고대 존재 앞에서 하찮기 그지없으며, 그 앞에서 인간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미쳐버리거나 그저 그 현장을 피해 한 몸 건사하는 것뿐이다.

우주적인 존재는 미지에서 날아와 인간의 무력감을 먹는다. 러브크래프트가 아직도 읽히는 까닭은 미지와 무력감이 공포의 원류이며, 누구나 이 작품을 통해 어릴적 침대 밑에서 빛나던 상상 속의 눈동자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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