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 딱 제목을 봤을 때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 내용인지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말이다. ‘배설’이라는 단어가 주는 역겨움과 혐오감, 동시에 우리의 일상 속에 같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친근함이 뒤섞인 채 흥미를 자극했다. 브릿G에서 두 번째로 만나는 공포소설이다. 기대보다 좋았고, 브릿G라는 소설 플랫폼에 대한 믿음이 더 깊어졌달까.
작품은 ‘배설’이라는 설정, 또는 주인공의 행동, 아니면 주인공의 쾌감으로 시작해 끝난다. 배설을 하는 데 집착하는 주인공의 과거가 한 면 한 면씩 드러날 수록 그의 배설행위는 단순한 쾌감이 아니라 어떤 몸부림, 무언가로부터 벗어나려 하는 끔찍한 발악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대변을 참을 수밖에 없던 상황, 그리고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공포와 쾌감이 동시에 뒤섞인 일종의 강박증으로 자리잡은 남자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생리현상’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생리현상을 생리현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 자신만의 괴이한 설정을 부여해버린 상황인 셈이다.
주인공의 ‘배설’ 행위가 단순한 생리현상이 아니라 은유로 쓰인 것도 좋았다. 물건을 배설하고, 자신이 좋아하거나 아끼는 것을 배설하는. 거기엔 자신을 버린 모친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변기는 막혀도 뚫으면 되니까, 하는 생각은 약간 지나치게 비약된 게 아닌가 싶다. 애초에 물건을 부숴 변기에 내리는 행위가 계속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좀 더 다듬는다면 더 훌륭한 비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보육원 동기 여자를 죽이고, 여자의 토막 난 시신들을 변기에 ‘배설’하는 후반부 전개가 너무 갑작스럽다. 주인공에 대한 과거나 내면, 광기와 쾌락이 충분히 설명된 것 같은데도 여자를 ‘살해’하고 시체를 토막내 변기에 버리면서까지 느끼는 ‘쾌락’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또한 공포 장르라는 것을 의식한 탓인진 모르겠으나 굳이 강간, 살해, 시신 훼손 및 유기라는 극단의 설정들이 결말부에 쏟아져야 했는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다른 식으로 ‘배설’의 의미와 비유를 살렸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주인공의 ‘내가 나를 배설하는 행위’ 역시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변소를 찾아 거기에 몸을 던지는 행위를 보여주면서 ‘내가 나를 배설하는’ 것임을 드러내는 것은 그 전까지 쌓아온 긴장감이나 주인공에 대한 독자의 공감과 이해를 반감시킨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쾌락만을 위해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남자가 굳이 시골 학교 변소에 제 몸을 스스로 던져 죽어갈까? 나로서는 거기에 의문이 계속 맴돈다.
후반부에 대한 아쉬움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첫 문장부터 마지막까지 단문의 문장들이 작품의 분위기와 설정과 잘 어울린다. 설정 자체가 워낙 신선하고 흥미를 끄는지라, 아쉬우면서도 재밌다. 좀 더 길어진, 그리고 후반부를 새롭게 다듬은 퇴고작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