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과 믿음 공모

대상작품: 어느 편집장의 편지 (작가: 하나와 앨리스, 작품정보)
리뷰어: 지이훈, 18년 12월, 조회 26
  1. 공감

나는, 소설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 중 감정 이입이 작품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체험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감상법이라고 믿는다. 인물에게 공감하고 이해하며, 그의 고난에 안타까워하고 그의 행복에 즐거워하거나 슬픔을 연민할 때 우리는 작품 안에 있지 않던가.

그렇기에 작가는 보통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매력을 느끼는 인물이 탄생할지 고민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가끔, 이런 보편성을 180′ 틀어 어떻게 하면 더 적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 인물을 구축하는 전략을 쓰는 작가들이 있다. 특정한 경험이나 지식, 감정이나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들. 위험하지만 유효한 전략이다. 더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지는 못할 수는 있어도, ‘, 이건 정말 내 이야기야!’라고 말하는 독자들로부터 더 큰 사랑을 받아낼 수 있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이 작품이 그런 이야기였다.

소설, 만화, 영화, 그 중 어떤 장르건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껴 보았을 좋은 작가를 기다리는 마음, 그 작가의 작품을 출간일(혹은 방영일, 개봉일)이 되자 마자 서점(TV, 영화관)으로 달려가 작품을 샀을 때의 기대감, 그 출간일이 가까워져 오기는 커녕 점점 미뤄지거나 기약조차 없을 때의 작가에 대한 걱정이나 내가 죽기전에 읽어볼 순 있나 싶은 초조, , 대체 왜 안 쓰나 싶은 사소한 분노.

이 소설은 이런 막연한 감정들을 모두 온전한 애정으로 감싼다. 몇 년, 혹은 몇 십년이 지나도 추억이 되어 잊히지 않는 순수한 애정. 작품 자체의 뛰어남에 대한 애정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땅콩버터의 냄새를 불러오는 추억같은, 작품과 함께하던 시절의 기억이 보석이 되어 우리 안에 새겨질 때 생겨나는 애정. 그 애정에 대한 공감이 이 소설이 아름다운 첫번째 이유이다.

 2. 믿음

이 소설은 믿음을 준다. 의도적으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거나 시니컬한 말씨로 거짓말을 반복해 의심이 주된 경험인 소설도 재밌지만, 이 소설처럼 믿음을 주는 작품은 우리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준다.

내가 좋아하는 정말로 훌륭하고 좋은 것은 다른 사람도 사랑해 주리라는 보편적인 독자들의 믿음,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이 정말로 훌륭하고 좋은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리라는 보편적인 작가들의 믿음, 그 중에서도 만화는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피터 모리스의 믿음, ‘정말로 훌륭하고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천재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편집장의 믿음, 그 밖에 수많은 믿음이 이 소설에서는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진다.

그리고 그 중에 내가 가장 감동한 것은,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어느 새 피터 모리스는 돌아올 것이다라는 믿음이 생겨 있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피터 모리스의 인품에 대한 서술은 사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피터 모리스가 돌아오리라는 믿음이 왜 생겼을까 고민했을 때, 편집장이 말한 것 같은 인물이라면, 그가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고 만화를 사랑한다면 돌아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유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면, 순진하고 뻔하지만, 빛나는 엔딩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토록 순수하게 믿음을 주는 소설에는, 그런 엔딩이 어울리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 믿음이 이 소설이 아름다운 두 번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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