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 엄마는 어떤 분이죠? 의뢰

대상작품: 플랩 (작가: 고어라운드, 작품정보)
리뷰어: 글포도, 18년 12월, 조회 61

내용 전체 스포일러 있습니다.

 

한 아들이 있습니다. 홀어머니를 떼어놓고 여행을 떠나는 젊은 아들. 군대를 간다거나 해외로 취업이 돼서 나간다거나 뭔가 불가피한 어떤 이유에서 헤어져야만 하는 그런 안타까운 이별은 아니지만 어쨌든 공항에서 이 모자는 이별을 해야 합니다. 보름간의 여행 후에 다시 만나게 될 거라지만 어쨌든 이별은 뭔지 모르게 서로의 마음을 자극하는 게 있나 봅니다. 아들은 공항까지 따라나선 어머니가 불편하고 밥을 먹자는 엄마에게 괜히 짜증을 내고 보통 아들들이 만만한 엄마에게 잘 그러듯이 그런 태도로 대하고 있습니다. (아들들은 엄마에게 왜 그러는 걸까 궁금하긴 했었습니다.) 어머니는 금쪽같은 아들이 먼 타국까지 간다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꽤 신경이 쓰여서 아마 공항까지 마중 나왔겠죠.

이 이야기는 공항에서 잠시 비행기를 기다리는 대기실에서 시작해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 후 게이트로 환승하러 갈 때까지의 몇 시간 안 되는 동안을 다루고 있습니다. 공항에서의 대기 풍경, 수속 절차, 비행기 내에서의 광경 등이 비교적 충실히 서술되고 있죠.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건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감정들과 비행기를 타기 전과 후의 아들(진우)의 마음 변화입니다. 틱틱거리고 불친절했던 아들은 그 짧은 비행시간 동안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과 미안함을 되찾고 기특한 마음을 먹기까지 합니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명쾌한 결말로 끝났습니다. 문제는 별로 재미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야기가 단순하면 인물이라도 개성적이든가 서술이라도 궁금증을 유발하게끔 뒤섞어 놓든가 뭔가 변화를 줘야 지루하지 않은데 이 소설은 단선적인 서술에 회상이나 생각이 약간씩 덧붙는 정도입니다. 그래서인지 수필이나 일기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합니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공항에서 시작하는 것일까 호기심이 들었더랬습니다. ‘떠나는 이유’가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곧 취업이 안 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사회나 친구들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자신의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함이라고 바로 여행 목적을 독자에게 알려줍니다. 그럼 여행하는 동안 무슨 특별한 일이 생기려나? 또 기대를 옮겨 봅니다. 독자는 뭔가 호기심을 붙들어야 안심이 되거든요. 그런데 쉽사리 어떤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사건이 일어나거나 어떤 암시도 없이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일본 여행이 처음이라는 모녀를 만나 잠깐 대화를 나누는 거 말고는 별다른 일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진우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기내식을 먹고 어머니에 대한 짧은 추억을 회상하고 착한 결심을 하고 그게 답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끝나버려서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내용이 너무 단순한데다 예상이 가능한 내용이라서요. 뭔가 색다른 반전이나 어머니에 관한 뭔가 좀 더 특별한 추억이라도 있기를 바랐었거든요. 홀어머니와 외아들이 가질 법한 독특한 이야기들도 얼마든지 많으니까요. 그런데 어릴 때 어머니와 여행을 많이 다녔다는 간단한 말과 스키장에 대한 추억을 짧은 문장 서너 줄로 끝내버려서 더욱 아쉬웠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혹은 어린 시절 추억들에 대해서 좀 더 풍성하게 이야기를 넣어주심이 어떨까요? 어머니가 등장하긴 했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그 어머니에 대해서 딱히 떠올릴만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어.머.니. 일 뿐입니다. 옆집 엄마, 앞집 엄마 할 때 그 엄마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인데 독자는 그 어머니를 특정해서 떠올릴만한 게 없어요.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고 나이는 얼마나 됐는지 세련된 외모를 가졌는지 주름진 할머니의 외모를 가졌는지 뭘 하면서 외아들을 혼자 키웠는지 전혀 모르니까요. 저 사람이 진우의 엄마다 하는 그런 개성을 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인공(진우)에 대한 것도 마찬가집니다. 준비성 없고 엄마에겐 무뚝뚝하지만 낯선 타인에겐 친절하다는 것 말고는 알만한 게 없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났는데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도 전혀 없습니다. 그냥 가난한 청년백수, 여행을 떠나려는 젊은 남자일 뿐이죠.

이야기가 단순하다면 등장 인물들이라도 좀 특색이 있거나 흥미를 끄는 매력이 있어야 관심이 생기는데 제가 보기엔 특별히 관심을 끌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엄마도 아들도 너무 평범합니다. 여행 가방을 살뜰히 챙겨주고 떠나기 전에 밥 먹일려고 안달하는 어머니, 엄마에게 짜증내는 아들들은 너무 흔하잖아요. 그걸 넘어서는 무엇, 이 어머니만의, 이 아들만의 뚜렷한 개성이 좀 더 드러나는 에피소드라든가 어떤 구체적인 묘사가 더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은 왜 아버지는 없는지 언제부터 둘이 살았는지 어머니가 어떻게 자신을 대했는지 비행기 안에서의 두어 시간 동안 그런 구체적인 회상들을 좀 더 많이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그리고 중간 중간 쌍따옴표로 처리한 혼잣말들이 나오는데 상상해보면 좀 어색합니다. 쌍따옴표라면 밖으로 내뱉은 말이라는 건데 흐름상 사람들 틈에서 저런 혼잣말을 하는 게 꽤 어색해 보여서요.

 

– 잘사는 사람들 정말 많구나.

– 하긴 나처럼 돈도 빽도 없는 놈도 외국에 가본다고 비행기 타는데…

– 결국 진짜 여기까지 왔네.

– 괜히 어머니랑 밥을 먹었네.

– 이렇게 금방 오는 것을…

 

물론 저런 혼잣말을 하지 말란 법도 없지만 저 말을 할 때 상황을 떠올릴 때 제가 옆에 있는 사람이라면 저런 혼잣말을 내뱉는 남자가 좀 이상하게 보일 것 같거든요. 혼잣 생각이라면 어색하진 않은데 그렇다면 뒤에 ‘차라리 커피나 한잔 하고 있지’ 같은 문장처럼 처리하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아무데서나 혼잣말을 잘하는 성격이라고 이해해야 하려나요?)

 

거추장스러운 플랩, 그러나 이착륙시 꼭 필요한 그것. 모든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플랩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 이 부분과 진우의 새로운 결심으로 이어지는 건 좋았지만 단순히 도움을 줬던 모녀의 모습을 보고 또 어머니와 스키장에 갔었던 추억을 잠깐 떠올리고 연결하기엔 좀 빈약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 사이에 어머니와 진우의 애틋하고 돈독한 관계에 대한 추억들이 좀 더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비행기가 폭발하거나 추락해서 ‘아들’이 귀신이 된다거나 조난당하거나 하는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소설이라면 혹은 그랜드 캐넌에 가는 동안 소매치기를 당해서 상거지가 돼서 외국에서 갖은 고생을 진탕 한 다음에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하회와 같은가 뭐 그런 깨달음을 얻는 그런 소설이 아니라면 뭔가 흡입력이 강한 과거의 추억이라도 좀 풀어주셔야 이야기를 읽을 맛이 날 것 같은데요. 독자가 너무 자극적인 이야기들에 길들여진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머니에게 친절하지 못했던 아들의 감정과 후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는 공감이 가지만 이야기가 너무 밋밋해서 별다른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작가님이 글을 처음 써보기 시작하셨다고 하시는데 용기를 드리고 칭찬을 많이 하고 싶었지만 쓰다 보니 지적질만 하고 있었네요. 무난하게 읽혀서 좋았다고 말씀드릴 수도 있지만 저도 소설을 쓰다 보니 솔직한 평을 듣고 싶을 때가 많아서 독자로서 느낀 솔직한 감상을 적어보았습니다 지나쳤다면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앞으로 작가님의 더 많은 소설들을 만나길 기대하겠습니다.

저 정식으로 리뷰 의뢰는 처음 받아봐서 작가님께 오히려 감사드려야 하는데 이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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