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공모(감상)

대상작품: 초월번역 (작가: 아침은삼겹살, 작품정보)
리뷰어: JonJon, 2시간 전, 조회 7

아침은 삼겹살 님께서 쓰신 이 ‘초월번역’이란 작품을 보고 나니, 예전에 유명 번역가가 번역했던 그 유명한 우주방어 영화 시리즈의 마지막 명대사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어머니…

작품 속에서 매우 중요한 조연이었던 닉 퓨리는 지구가 종말(지구 생물의 반절이 사라짐)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를 찾습니다. 대체 왜 카리스마 넘치던 닉 퓨리가 그 찰나에 어머니를 찾았던 것일까요? 하지만 사실 우리가 스크린을 통해 보아온 닉 퓨리는 그렇게 나약한 인물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그는 절대로 유약하게 어머니를 찾을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 그 대사 ‘어머니’는 서양에서 흔히 쓰이는 비속어를 내뱉으려다 중간에 대사가 끊긴 것입니다. 감독이 결론 부분에 극적인 긴장감을 주기 위해 넣은 이 기가 막힌 대사 끊김을, 번역가가 멋대로 해석하여 전혀 엉뚱한 번역을 만들어 놓은 셈입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관객들은 그 대사가 가진 의미의 본질을 찾지 못해 커다란 혼란에 빠졌고, 그나마 원어의 뉘앙스를 알아들은 몇몇 관객들은 밀려오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번역이라는 작업은 번역가의 재량과 해석에 따라 결과물에 거대한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작품의 본질을 훼손하기도 하고, 때로는 원작과 전혀 다른 새로운 맥락을 창조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또 다른 번역의 현장으로 이어집니다. 김번역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대성당’의 번역을 맡아 고군분투한 끝에 마침내 번역을 완료했고, 편집장에게 최종 번역 확정본을 받게 됩니다. 아뿔사, 그런데 인쇄를 앞둔 마지막 문장의 번역이 그가 가슴속에 품고 의도했던 내용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는 마지막 문장이 ‘거시기’라는, 지극히 모호하면서도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단어로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최종 번역본은 ‘이거 정말 대단하군요’라는 명징한 찬사로 마무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물론 ‘대성당’이라는 작품에 널리 알려진, 어쩌면 대중적으로 가장 어울리는 결말일지도 모릅니다. 헌데 이 글을 쓴 작가는 왜 김번역이 생각했던 것처럼 결말을 전혀 다르게 상상하고 표현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이 원서의 원작자가 작품의 결말을 완벽하게 닫아짓지 않고, 독자가 들어설 자리를 남겨둔 열린 결말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작품의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온전히 작가의 선택이자 권리입니다. 그러나 간혹 이런 열린 결말의 작품을 보면서,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저마다의 시선으로 공백을 채우며 서로 다른 결말에 도달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작품을 쓸 때 결말을 꼭 제 손으로 명확하게 지으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열린 결말은 그 자체로 독자에게 깊은 여운과 사유의 공간을 제공하는 훌륭한 장치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사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고 도중에 멈춘 듯한 미완의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책장을 덮는 순간, 이야기의 세계가 온전하게 완성되기를 바라는 창작자의 책임감이자 욕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완벽히 완료되지 못한 결말이 있었기에, 김번역의 고뇌를 다룬 이토록 흥미로운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 여백이 만들어낸 독특한 매력에 이끌려 이렇게 작품의 리뷰까지 적어 내려가다 보니, 어쩌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열린 결말에도 나름의 존재 이유와 필요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글에서 결말을 꼭 지을 것입니다. 문장의 마지막에 찍히는 묵직한 마침표 하나야말로, 제가 창조한 세계와 그 속에서 숨 쉬던 인물들, 그리고 그 여정을 함께해 준 독자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정성스러운 예의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작품이 주는 진짜 여운은, 단단히 닫힌 문 틈새로도 충분히 흘러나오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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