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바라본 사회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마음씨, 고운, 아이 (작가: 29N, 작품정보)
리뷰어: 캣닙, 18년 12월, 조회 69

소설은 아직 10세도 체 되지 못한 어린 여자아이의 지난 인생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한편, 차분하게 재생하는 것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거기서 현재의 한국이 처한 다양한 문제점들이 근미래라는 세계관에 빈틈없이 녹아있는 것을 관찰 할 수 있다.

양극화 사회, 인성교육이 아닌 성적순으로 평가 당하며 동심의 근간부터 어른들의 욕망에 변질되는 어린이들, 거기에 편승하는 어른들과 그것을 공고히 다지는 기업과 교육 기관들. 모든 것이 문제 투성이이다.

이 모든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고 심화된 미래의 한국에 기계 디바이스에 의한 트랜스 휴머니즘이 현실화하면서 발생하는 사회 갈등은 기어이 테러의 양상으로 발전하고 만다.

네러티브는 인간이 타고난 모순과 이를 해결이 아닌 경쟁으로 몰아붙이는 사회를 차분히 바라보는 인공지능의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그 시선 속에서 아이의 마음이 어른의 책임 회피와 부모가 가진 불편한 진실을 배우면서 점차 잘못되어가는 모습을 끈기있게 따라간다. 인공지능은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주지만 감정이 앞서는 어린아이에겐 그저 지식의 확대만이 요긴할 뿐 나머진 무시당하며 지도를 해주어야 할 어른들은 결코 견본이 되어주지 못한다.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가며 계급 사회를 내면화 해가는 어린아이의 되바라진 심성을 보며 누구를 탓해야 할까? 부모의 정이 필요한 어린아이와 그 아이와 공생해야할 인공지능은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똑같이 무력한 위치이다.

여기에 더해 계급화를 내면화 해버린 노동자 계층은 입이 있어도 비명을 못지르는 현실까지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엄밀히 보자면 보조지능이 없는 낮은 계급의 아이와 보조지능이 있는 부유 계급 아이 모두 불필요한 일들을 겪고 있는 것이다.

트랜스 휴머니즘과 이를 가능케 한 기술 발전이 인간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긴 커녕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 디스토피아의 비극이 천진한 아이와 담담한 인공지능의 눈에 담겨가는 모습은 희극적이기까지 하다. 결국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기인한다는 도식이 완성된다.

어리석음은 번뇌(煩惱)에서 비롯되며 이는 인간의 욕망과 감정 때문이다. 감정을 제대로 다스려 해탈로 나아갈 길은 미래에서도 요원해 보인다. 인간이 삶에 집착하는 한 감정에서 벋어나지 못할 것임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는 소프트웨어의 문제인가, 하드웨어의 문제인가? 아니면 현실이라는 가혹한 환경이 원인인가?

보조지능 덕에 2차 성징이 오기도 전에 거의 대학원 수준의 토론을 하는 아이들은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불교의 ‘오근’, ‘오경’, ‘오욕’을 거론한다. 앞의 감각을 통해 인식한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가 심층의식에 기록되고 이 정보가 인간의 언행에 영향을 끼치는 것- 이 심층의식이 아뢰야식(阿羅耶識)이다. 고운이가 이식받은 생득형 보조지능이 바로 이 아뢰야식이라 불리운다.

아뢰야식 마음씨가 보조하는 인간 고운이는 이제 더이상 착한 아이가 아니다. 더 어린시절 훨씬 악화될 고비는 보조지능의 도움으로 간신히 피했으나 이대로 크면 작중에서 차별 용어로 쓰이는 ‘싸이코그’로 자라날 것이 확실하다. 어린시절부터 보고 배운데로, 불교의 아뢰야식 이론에 따라 그런 자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기술발전에도 불구하고 악업의 윤회를 끊어내지 못한 어른들의 과오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생태 축적하듯 쌓여가는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그런 사회에서 자라난 어른들은 보조지능의 유무에 상관 없이 잘잘못을 무조건 남에게 돌리며 급기야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테러를 벌이기에 이른다.

아뢰야식 보조지능을 만든 기업의 이름은 마옛(Mayet)이다. 제대로 본 것이 맞다면 이 이름은 죽은 인간의 영혼을 심판하는 이집트 여신 마아트의 또다른 이름이다. 어린이가 어른들의 미래라면 마아트는 작중의 미래에 대체 어떤 선고를 내린 것인가?

작품의 타이틀 ‘마음씨, 고운, 아이’는 이어지는 문장이 아니라 단어 각각이 중의적 의미를 담고 독립되어 있다. 그에 맞추듯 결말 역시 중의적이다. 인공지능의 시선대로 희망의 결말로 읽을지, 나머지 아이를 따라 비극으로 읽을지 또한 고스란히 독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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