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엽편입니다.
엽편이지만 산문시로 썼어도 괜찮을 만큼의 읽기 분량입니다.
갈래야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습니다. (사실 시 리뷰 해보고 싶음)
작가가 선택한 갈래에는 마땅하게도 갈래의 특징이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특징은 자명하게도 갈래의 핵심 구성 요소들을 말하는 것이겠습니다.
이 작품은 산문의 한 종류인 엽폅, 엽편입니다. (지하철 역 안내 방송이니?)
각설하고,
본 엽편에서 서술자인 ‘나’는 그동안 타자와의 관계에서 겪은 아픔이 딱지가 되어 돌아왔고 ‘그것들을 떼어내려 애썼’다고 술회합니다.
그리고 끝에서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이면서 더는 떼쓸 수 없는 제약으로 곧 돌아올 자신의 생일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아픔과 아픔을 극복하는 성장통의 모습(이미지)은 조금 부족하게 표현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서술자인 ‘나’가 부탁하는 위로이자 물음인, 즉 ‘봐줄 만 하’냐는 결국 옅은 호소력으로 아쉽게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미지는 비유와 상징으로 그려냅니다.
대상인 되는 것은 보통 ‘자신과 타자’ 또는 ‘사물과 세계(일반적으로 사물을 통해 세계의 본질에 접근합니다)’입니다.
사물과 세계
예) 손끝이 닿자 붉은 녹가루 몇 점 떨어지면서 열쇠에 긁힌 것 같은 자국들이 드러나던 녹슨 자물쇠를 나는 기억한다. 당시에 나는 큼직한 뭔가가 목구멍에 턱, 하고 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신의 소용이 상처만 낳는데도 자물쇠는 입을 앙다문 채 말없이 세월을 거느려온 것이었다.
문득 사람 사이에도…… (이하 생략) -꽁꽁주스의 생활 수필 가운데 ‘자물쇠’의 한 부분
상징이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원형적 상징을 넣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 작품 마지막에 서술자인 ‘나’가 빗길을 달리며 윗옷 하나씩 벗어던지는 모습을 묘사한 문장과 ‘가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라고 써주고 마무리 했다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비)은 원형적 상징으로 생명력, 탄생, 정화, 속죄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 빗속에서 옷을 하나씩 길거리에 벗어던지는 행위는 낡은 틀이나 형식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마음을 이미지로 잘 전달하는 보편적 방법이기도 합니다.
다만 여기저기 많이 쓰인 방법이어서 좀 식상할 순 있겠죠 ㅎㅎ;;
물론 이렇게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왜 이래야 하는가, 라고 반문하신다면
분량이 짧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을 짧은 분량에서 이야기하고 주제 의식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미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치환! 치환이 있습니다.
‘나’는 용기 내어 고백한 아픔을 처음이자 마지막일 ‘어리광’이라 말합니다.
아픔을 어리광으로 치환하고 건네는 물음!
행여나 생각건대 ‘나’의 이 물음은 진심으로 축하해야 할 일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그러니
이제 저는 불을 끄겠습니다.
한껏 불어 촛불을 꺼주십시오.
(‘나’에게 들러붙은 딱지가 아물은 상처의 딱쟁이가 되었길 바라면서)
생일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