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밤에 읽고나서 감탄했습니다. 제가 부모님에게 너그러워지기 시작한 게 이 문장을 깨닫고 나서였거든요. 20대 후반이 된 지금도 여전히 부모님과 대화가 안되지만 의사소통까지는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한 게 이걸 알게 된 뒤부터였어요.
글은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좋았습니다. 가윤이와 가윤이의 부모의 대사가 이어지고 글의 공백이 생길 만하면 절묘하게 나의 독백이 채워주었기 때문에 간만에 꽉찬 글을 읽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가족 안에서의 모습만 묘사했더라면 다소 식상했을 수도 있는 글이 탐정인 나의 관점을 넣음으로써 신선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른들은 안 변해. 자기 엄마아빠보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정말 최선을 다한 게 지금 모습이거든. 그러니까 가윤아, 너도 너네 엄마아빠보다 좋은 사람이 될 거야. (중략)”
20대 탐정인 나의 눈을 통해서 그려내는 가윤이의 가족은 매우 현실적이다. 아내는 직장생활도 공부도 못해본 자격지심에 아이만은 잘 키우겠다고 과도한 기대를 걸고 있고, 남편은 아내를 대놓고 멸시하면서 제대로 된 의사소통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해심도 배려심도 없는 건 남편도 마찬가지였고, 가윤이는 어린 나이에 과중한 공부에 시달리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까지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가출하게 되는 상황.
부모는 모두 자식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 부모가 되고나면 자식이었을 때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듯 싶다. 막상 키우다 보면 잘 키우고 싶고 남에게 뒤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조바심도 날 터다. 그러나 가윤이네 가족에게서 가장 부재한 것은 남편도 아내도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랄까.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기만 불쌍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정작 불쌍한 건 가윤이다. 엄마는 혼만 내고 아빠는 공부만 시켜서 싫다는 가윤이의 말은 지금 부모세대와도 다를 것이 없으리라.
아내가 위치추적까지 해 가며 아이를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 못지않게 남편의 책임회피는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다. 무조건 아내 잘못. 나는 잘하고 있는데 아내가 이상해서 자식을 망치고 있다. 훈육에서 아버지가 갖는 책임을 주양육자는 아내라며 상대에게만 전가하는 비겁한 남편이다. 하다못해 아내의 불안한 심리를 옆에서 잡아주기만 했더라도 아내가 궁지에 몰린 것처럼 아이를 닥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아내는 지금 상황에서 남편이 채워주어야 할 육아의 공백까지 자신이 채우느라 피폐해져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정에서 큰 가윤이가 과연 가윤이의 엄마나 아빠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가 있을까? 좋아하는 일은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서 안되고 안정적으로 편하게 살려면 건물주가 되어야 한다고 아이에게 말하는 가정에서는 행복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기가 어려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