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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작품: 요즘 왜 집회에 나오지 않으시죠?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주디, 18년 12월, 조회 63

언젠가 친구의 소개로 집회에 다녀온 적이 있다. 아무런 종교를 믿지 않는 나는 그저 그날이 ‘부처님 오신 날’ 같은 혹은 절에서 하는 큰 행사인 줄 알았다. 어떤 종교에 무게를 두고 있지 않지만 어려서부터 할머니 손에 이끌려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하고, 밥을 먹고 온 것이 다였다. 그때도 그저 종교 행사지만 그렇게 큰 무게를 두고 가지 않았다. 그저 친구와 함께 놀러가는 정도로만 생각을 해왔기에.

 

그러나 내가 처음 발을 디딘 그곳은 엄청난 관중을 모일 수 있게 하는 **운동장이었고, 시간이 지나니 앉을 수 있는 모든 자리는 순식간에 채워졌다.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공간 안에서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았지만, 처음 그곳을 방문한 나는 숫자에 기가 질렸다.

 

발을 잘못 디디면 발밑이 깨질 듯한 얼음처럼 차가운 침묵에 민우는 장바구니를 들고 부랴부랴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도 어쩐지 마주치는 사람마다 자신을 눈여겨보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마치 <요즘 왜 집회에 나오지 않으시죠?>의 주인공 민우처럼.  가볍게 나들이를 간다는 개념으로 갔던 나는 그들의 집회에 멈칫했다. 묵직한 기도를 낭독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딘지 모를 이질감이 묻어났다. 함께 연극을 보고, 노래를 부르며, 낭독했던 문장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으로 간 곳이기에 당연히 아는 것도 없었던 나는 그저 ‘투명인간’처럼 그들이 웃고, 떠들고, 기도하는 것을 지켜 보았을 뿐이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들이 많은 집회에 대한 공간이, 많은 이들의 믿음이 무서웠다. 형언할 수 없는 그들의 믿음이, 다수의 생각들이.

 

그 후로 종종 친구는 집회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나 ‘강요하는’ 종교에 대해서는 치를 떠는 걸 아는 터라 그 후로 그 친구는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하루의 짧은 일탈을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선택 할 수 있어 가지 않았지만 소설 속 민우는 그 속에 집합되지 않으면 오히려 사회의 옥의 티로 변모하게 되었다. 선택이 아니라 ‘강요’에 가까운 마수이의 손길이 그에게 생사를 오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짧은 이야기였지만 오래 전 경험했던 공포를 일깨워주는 이야기였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기도 하다. 은헌님의 <요즘 왜 집회에 나오지 않으시죠?>는 ‘집회’ 속에 많은 이들이 ‘민우’를 끼워 넣으려 했지만 비단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종종 ‘선택’할 수 있다지만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는 자발적 참여가 아닌 누군가의 손길로 그들과 같은 색깔을 만들기에. 벗어날 수 없는 늪의 시간 속에 민우의 발이 꿰인듯 그렇게 같은 시간 속 색채로 민우의 목소리가 동요(動搖)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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