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줄부터 불안했고, 계속 불안하다가 마지막에 그래도 해결이 되었습니다.
첫 줄을 읽자마자 불안했어요. 그 다음 문단을 보고 더 불안해졌고요. 희망이 산산조각나고, 꿈이 바스러지며, 약속이 깨지는 그런 것들을 보다 보니 사귀게 되었다는 희망찬 서두를 보자마자 관계가 박살나는 전개가 나올 것 같았어요. 남은 고등학교 생활은 알콩달콩 보낼 거라는 말을 보고나서는 더욱요.
일단 띄우고 시작을 했으니 이제 남은 건 땅바닥으로 고꾸라지는 것 뿐이라는 전개가 나오리라 생각했어요.
이후의 서술이 제 불안감을 증폭시켰어요. 같은 반 아이들은 피하는데 주인공과는 친하게 지내는 주인공의 연인. 연인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을 것 같았어요. 게다가 사귄다는 것도 비밀이라고 하니 더욱요.
손가락을 뜯는 버릇이라던가, 뭔가를 들킨 연인, 손목의 밴드. 손목의 밴드를 보고 리스트 컷일 것 같았습니다. 손목 자해를 감추기 위해 손목에 손수건 같은 걸 감고 다니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손가락을 뜯는 버릇은 자해를 하지 못해서 나오는 대체용 버릇일 거라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연인은 자해를 하고, 자해를 한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으나 들켰다. 그래서 사람들이 연인을 피한다. 혹은 연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 가령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던 연인은 자해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아무튼 날붙이를 쓴다는 사실에 설마 얀데레 엔딩이 나오는 게 아닐까 불안했어요. 평생 내 친구인 거냐는 질문을 보고 더욱요.
말문이 막혔다는 서술을 봤을 땐, 우리 친구 맞냐는 질문에 왜 말문이 막히나 싶었지만 다음 서술을 보고 이해했습니다. 고백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그랬구나.
새 인물의 등장. 중학교부터 같은 동아리의 남자. 게다가 동아리 입부를 권하는. 육상을 좋아하고 잘하기까지 하면서도 동아리에 들지 않은 주인공에게 “육상” 동아리의 존망이 달린 것 같이 유혹하며. 혹시 삼각관계가 피칠갑 파국으로 끝나는 건가 불안했어요. 유이만은 어린아이로 남아달라는 서술에서 더욱요.
주인공에게 친구가 많다고 말하는 연인, 연인이 친구를 사귈 수 있게 도와주겠다면서도 친구가 생기면 어쩌나 불안해하는 주인공. 다른 이들과 점점 말을 하는 연인
그래도 연인이 먼저 어프로치하는 장면에선 지금껏 쌓여있던 긴장이 풀렸어요. 희망이 산산조각나고 관계를 시작하느니만도 못하게 꺾이는 걸 봐왔다고 해도 해피엔딩이 좋단 말이에요. 그래, 그래도 역시 결말은 해피엔딩이 좋지.
그런데 주인공은 불안하다고 해서 저도 덩달아 다시 긴장했어요. 연인이 손목 밴드를 잃어버렸다길래 사건이 터지겠구나 했어요. 역시나 사건이 터지더라고요.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연인을 연인이 아이로 남아있길 바라는 주인공이 과보호하는 엔딩일까 싶었어요.
그런데 이별 통보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잘못본줄 알았어요. 연인이 입에 김치를 넣었다는 문장을 보고 김치를 입에 넣어줬다고 봤었는데 다시 보니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잘못본 게 아니더라고요. 고백 대상이 주인공에게 육상부를 영업했던 인물인걸 보고 역시 삼각관계였나 했어요. 그 이후의 서술은 인물들을 움직인 동기에 대해 밝히려고 하셨다고 생각해요. 떡밥의 회수죠. 유이는 주리를 묶어두기 위해 주리의 고백을 수락했고, 주리는 유이에게 친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고백했다. 유이가 자신만을 보기를 바랐다. 그래서 손목 밴드를 숨겼다. 밴드가 없어 불안한 유이가 내가 위로해준다. 유이는 내게 기댄다. 그래도 유이에겐 여전히 친구가 필요하다. 나도 유이에게 친구가 필요하다는 걸 안다. 그래서 서로 손 털고 끝내지는 못하는 결말이다.
말이 장황했고 의도하신 게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읽는 사람이 불안하기를 바라고 쓰셨다면 성공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즐겁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여드렸던 걸로 응모를 해도 된다고 하셔서 막차를 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