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닭모를 용두사미 공모 브릿G추천

대상작품: 냄새 (작가: 녹차빙수, 작품정보)
리뷰어: BornWriter, 18년 11월, 조회 145

매우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우매우 스포일러 함유합니다.

매우매우 매우매우 매우합니다(?)

 

나는 꽤 솔직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 작품을 읽게 된 까닭을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작품의 매수에 비해 리뷰 공모로 걸린 금액이 커서’라고 하겠다. 그리고 다 읽은 지금 나는 상당히 만족스럽다. 리뷰 공모와는 별개로 재미있는 단편을 읽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다른 사람도 동일하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이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해보기로 하자.

 

1. 만족스러운 도입부

올해 여름처럼 무진장 더운 어느날, 안그래도 훅훅 찌는 버스 안에서 암내를 풀풀 풍기는 누군가가 내 옆에 앉는다면 어떨까.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기분이 더 나아지는 일 따위는 당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거꾸로 만약 누군가가 내 암내 때문에 자리를 비켜 도망간다면, 그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충분히.

그런데 주인공은냄새가 역해서 아니고 냄새가 무언가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자리를 비킨다. 도대체 무슨 기억일까. 흥미가 안 생길 수가 없다. 작가는 이렇게 첫 문단만에 이 작품이 ‘냄새‘라는 키워드로 진행된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고 / 확고한 닻이 내려진 덕분에 다음 문단부터 우울증 관련 이야기가 진행되어도 글의 맥락은 방황하지 않고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최근 읽은 단편들 중에서는 최고라고 해도 좋을 만큼 훌륭하고 만족스러운 도입부였다.

 

2. 주인공을 움직이는 광기

이런 정신나간 결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이성적으로 행동해서는 안된다. 작품 내에서 주인공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모든 행동은 광기에서 출발한다. 또한 주인공은 설명 가능한 수순을 거쳐 광기에 도달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로 인해 어머니가 우울증에 걸렸는데, 매일 들려오는 어머니의 울음소리에 주인공 역시 우울증 비스무리한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보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주인공은 진짜로 (보통 사람이라면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방법을 찾아서 실행에 옮긴다.

이러한 전개가 설령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들다 해도 작가는 상당히 유려하게 ‘독자를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나는 작품의 내용이 사실적이고 현실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불구하고 ‘있을 법 하다’는 작가의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다.

 

3. 작가가 아는 것을 독자도 알게 하여라.

주인공은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야할지 떠올렸고, 그 다음부터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뛰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작품에 대한 나의 판단이 반으로 갈려나간다. 유기화학을 전공하고 실험 과목도 오지게 들은 나는 작품에 나오는 내용을 그리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그렇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작품을 보려 하는 리뷰어 나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꾸준히 나오는 이 상황에 대해 거부감을 느꼈다.

요즘 이과생이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문과가 훨씬 더 많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문이과 비율은 5:1 수준이었고. 거기에 “이공계 놈들인 소설 많이 안 읽는다”는 내 편견을 끼얹어본다면, 솔직히 나는 이 작품을 읽게될 독자들 중에서 [에틸 에테르 / 컨덴서 / 가열 맨틀 / 초자] 등에 대해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문스럽다.

브릿G에는 강아지 발바닥 모양의 귀여운 각주를 사용할 수 있으니, 작가가 아는 만큼을 독자도 알 수 있도록 각주를 적극 활용했다면 어떠했을까 싶다.

 

4. 까닭모를 용두사미

혹시 모르는 사람을 위해 이 작품의 장르를 말해두자면, 단편 ‘냄새’는 호러 장르의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작품이 용두사미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암내를 배양하는 과정이나, 그렇게 배양된 암내로 어머니의 우울증을 치료하려는 행위는 그렇다고 쳐도, 바람 불어 날아간 냄새를 따라 어머니가 아주 가버리시는 부분은 너무 웃기다. 솔직히 뿜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이과적 용어로 점철된 단편치고는 웃기고 좋았다.

그런데 호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금도 무섭지 않아서 결말은 의미를 잃어버렸다. 올해 읽은 단편 중에 손에 꼽을 만큼 재미있고 웃겼다고 생각했던 이 ‘냄새’라는 작품은, 작가가 정해놓은 장르 때문에 나란 독자에게서 낙제점을 받게 생겼다. 이렇게 재미있는 단편을 쓰고도 장르적 포지션 때문에 용두사미가 되어버리다니, 역시 소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 이게 호러가 아니면 뭐냐! 고 묻는다면 좀 애매하다. 브릿G에서 장르 선택은 그저 어느 카테고리에서 이 작품을 만나볼 수 있게 할 것이냐를 고르는 것 뿐이니까. 솔직히 이 작품은 장르를 모르고 읽었을 때(혹은 호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읽던 때)가 더 좋았다. 그러니 이런 오묘한 작품을 수용할 수 있는 카테고리가 브릿G에 생기기를 바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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