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막의 신>에는 외계에서 온 고양이들이 잔뜩(!) 등장합니다. 인간은 ‘토착종’이라 불리며 고양이들보다 한참이나 뒤떨어진 문명을 가진 종족으로 나오지요. 만일 충실한 집사로서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라면 크게 수긍하고도 남을 설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은 계급이 나뉘어 있습니다. 인간 사회 못지않지요.
먼저 바스테트부터 말해 보자면, ‘고양이의 얼굴을 지닌 반인반수의 고대 이집트 여신’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작품 서두에 나오지만 실상은 이렇습니다. 52번 은하 3구역 E-829 행성, 즉 지구에 파견된 민간기업의 사원일 뿐이죠. 인간은 호버보드를 타고 나타난 바스테트를 신으로 모십니다. 바스테트는 그런 인간의 신심을 이용해 자신이 근무할 기지국, 즉 피라미드를 건립하지요.
바스테트의 부하 직원으로 야생종 고양이와 본성직계혈통 고양이 들이 있습니다.
소설의 앞부분은 본성직계혈통 고양이가 전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피라미드에서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유유자적 근무하는데, 유일한 소일거리라고는 채팅창을 띄워 놓고 수다를 떠는 것뿐인 듯합니다. 야생종 고양이들을 깔보고 무시하는 게 그들의 오랜 습성이지요. 하긴 지구인들조차 미개한 토착종으로 부르며 혀를 차는 판국에 지구에서 오랜 기간 살아온 야생종 고양이를 동급으로 여길 수는 없었겠지요. 머리에 바이오칩이 박혀 있는 고양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야생종이 발견한 신비로운 풀 앞에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개박하죠.
소설의 뒷부분에선 야생종 고양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름은 ‘검정 귀’입니다. 야생종 고양이이지만 본성 고양이를 뛰어넘는 영민함을 갖고 있지요. 바스테트가 노환을 호소하며 재생성 장치에 들어가 있는 동안, 회장의 막내 손자가 지구를 방문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식품 개발을 위한 일종의 견학이라곤 하지만 고양이들은 기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재생성 장치 안에 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는 바스테트를 대신해 그들이 회장의 손자를 대접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검정 귀는 평소 바스테트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던지라 회장의 손자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가져오기 위해 떠납니다. 바로 개박하를 구해오기 위한 모험이지요. 그러나 우리 모두 알다시피, 고양이가 개박하를 아무런 훼손 없이 얌전히 들고 오긴 매우 힘든 법, 결국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지요.
검정 귀는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맹활약을 펼치는데 글쎄요, 야생종 고양이 출신인 그의 공로가 과연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줄거리를 되새기다 보니 이 작품은 인간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내용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귀여운 고양이들이 불쑥불쑥 등장하는지라 잠깐 잊고 있었지만 아, 이것은 지구인들의 천태만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네요. 어딜 가나 계급부터 나눈 뒤 하층 계급은 마음껏 무시하는 작태, 갑과 을의 관계를 매개로 불공정한 처사를 강요하는 것이나, 공을 세워도 출신에 따라 공과를 논하는 습성 말입니다. 고양이들은 결국 우리를 가리키고 있었네요.
야생종 검정 귀에게 본성계통인 얼룩꼬리가 묻습니다. 왜 그렇게 최선을 다하느냐고요. 검정 귀는 이렇게 답합니다.
그냥 바깥이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난 그게 좋은 거야.
이 작품을 읽고 난 뒤 제가 느낀 감정이 이와 비슷했습니다.
아, 이런 세계도 있구나. 이런 세계도 존재할 수 있어.
만약 이 작품을 읽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떠올리지 못했을 풍경 하나가 제 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있네요.
사막 저 멀리 보이는 피라미드의 주위를 호버보드를 타고 날아다니는 고양이들과 이족 보행하는 근엄한 고양이 여신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