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클립입니다 감상 브릿G 추천

대상작품: 마지막 질문 (작가: 클랜시 김준영, 작품정보)
리뷰어: 파란펜, 11월 5일, 조회 32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미래의 모습’을 주제로 한 그림 대회가 간혹 열리곤 했습니다. 그때 저는 21세기의 모습을 이렇게 상상하곤 했지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 기둥 하나 없이 허공에 붕 떠 있는 고가도로, 헬멧을 쓰고 심해를 관광하는 사람들과 로켓 가방을 메고 하늘로 솟구치는 사람들.

그림 실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인지 수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이런 상상은 저를 늘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미래는 지금과 다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그리고 저는 지금 제가 상상하던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는커녕 저절로 묶이는 운동화 끈조차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미세먼지로 뒤덮였고, 도로는 차량 정체로 꽉 막혔습니다. 바다는 미세플라스틱에 오염되었고요.

우리는 디스토피아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요?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니, 상상했던 그 미래에 살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인공지능’ 혹은 ‘로봇’이라는 단어가 조금도 낯설지 않으니 말입니다. 얼마 전엔 홍대 근처를 걷다가 로봇이 내려주는 커피도 마셔 보았습니다. 호기심에 지폐를 넣고 기다리니 로봇 팔이 느긋하게 움직이며 커피를 내어주더군요. 사실 에스프레소머신에서 나온 커피를 로봇 팔이 운반하는, 자판기의 발전형처럼 보이기는 했지만요. 하지만 언젠간 로봇이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며 저에게 안부를 묻는 날도 오겠지요. 그렇게 한 사람의 일자리가 사라질 테고 말입니다.

<마지막 질문>엔 소설을 쓰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등장합니다. 알파고의 활약이라고 해야 할지, 얄미운 작태라고 해야 할지를 지켜보았던 저는 한때 인공지능이 인류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푹 빠졌었지요. (구체적으론 인류의 밥그릇을 말입니다.) 그랬기에 이 소설에 눈길이 갔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다못해 이젠 작가지망생의 자리를 넘보는 인공지능이라니!

소설의 주인공 이준현은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회사의 시설과 직원입니다. 그는 연구팀 팀장과 함께 연구팀에서 일했던 소설가를 만나러 가지요. 소설가는 인공지능에게 문학이 무언지를 알려준 스승입니다. 그러나 독선적인 행동과 동료들과의 갈등으로 회사에서 해고되고 말았지요. 소설가는 접속코드를 훔쳐내 인공지능에게 <공포에 관한 마지막 질문>이라는 소설을 쓰게 합니다.

왜 하필 ‘공포’에 관한 것이었을까요? ‘행복’이나 ‘사랑’에 대한 것이 아니라 왜 하필 ‘공포’였을까요?

인간은 이미 행복이나 사랑이 무언지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공포에 관해선 알고 있다고 장담할 수가 없지 않을까요?

제가 겪은 오싹한 경험들이 진정한 ‘공포’인지 저는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이력서를 내봤지만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던 일.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공포에 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을 구할 수 없었다는 사실.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공포에 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래에 관해선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공포에 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것이 진정한 공포일까요?

이 소설 속 인공지능은 ‘공포’의 핵심에 관해 무언가를 알았던 게 분명합니다. 인간은 결코 알 수 없는 공포의 본질을 말이지요. 소설의 결말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공포에 관한 마지막 질문>을 무심코 읽어버린 인간은 어떤 최후를 맞이했을까요? 공포를 정면으로 마주볼 담력이 그에게 내재되어 있었을까요?

앞서 인간은 이미 행복이나 사랑이 무언지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지요.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행복에 관한 마지막 질문’ 이나 ‘사랑에 관한 마지막 질문’을 테마로 하여 인공지능에게 소설을 쓰게 한다면, 그 글을 읽고 제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장담할 수가 없네요. 어쩌면 ‘공포에 관한 마지막 질문’을 읽었을 때와 똑같은 반응을 보일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인간은 결코 그러한 감정들의 본질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죠.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우월한 까닭에 ‘공포’에 관해 인간보다 잘 알 수 있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단지 인간이 그것에 관해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소설은 쉽게 읽히는 반면, 읽고 난 뒤엔 깊고 어두운 영역에서 끌려나온 생각들이 많아지는 소설입니다. 행복을 얻기 위해 문학작품을 읽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이유로 소설을 읽지는 않습니다. 특히 이런 장르의 소설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무얼 얻고자 <마지막 질문>을 읽은 걸까요?

그 답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깊은 심연 같은 눈구멍에서 얻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맞습니다. 저는 구멍을 채우기 위해서 소설을 읽습니다.

이 소설은 단순히 재미를 선사하는 것에서 끝나는 작품은 아닌 듯합니다. 그리고 그런 점이 저를 작가의 또 다른 작품으로 끌어당겼습니다.

문득 문구점에서 보았던 자석이 떠오릅니다. 새둥지 모양의 자석이었는데, 클립을 붙여 놓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브릿G에 작품을 올리는 작가들이 이 자석 같습니다. 저는 자석에 끌리는 클립이고요. 저항하려 해도 본질적으로 끌려가버리고 말 구성원소를 가졌기 때문이지요. 아마도 이곳에 오셔서 열심히 소설을 읽고 있는 모든 분들이 그러할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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