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울수록 뜨거운 국물이 있는 음식이 눈에 들어온다. 티비를 틀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먹방’을 시전하는 터라 채널을 돌리기가 두렵다. 이미 밥을 배부르게 먹었음에도 보글보글 끓고 있는 냄비 속의 뜨거운 국물과 고기육수로 삶아낸 맛이 절로 연상되어 침이 꿀떡 넘어간다. 이미 먹어 보지 않아도 모두 아는 맛. 때때로 점심 때 끼니가 되어주는 이 맛을 알고 있음에도 자꾸만 생각이 난다.
어제 저녁 <국수>를 읽고 나서 하루 종일 <국수> 생각이 났다. 슴슴하지만 언제 먹어도 지겹지 않는 맛이라, 이 뜨거운 국물이 든 국수를 좋아하는데 연희작가가 쓴 <국수>역시 묘한 중독성이 있는 글이다. 먹는 것에 대한 욕망, 아이에게 동물에게 부당한 체벌을 가하고 보상으로 쥐어 주는 뜨거운 맛이 국수에 들어있다.
국수란 원래 흥겨운 잔칫날에도 먹는 음식이지만,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듯 작품 속에서 가희가 국수를 먹는 다는 건 누군가에게 처절하게 맞아 피멍이 드는 날이라 할 수 있다. 특별하지 않는 일상적으로 먹는 국수의 맛 처럼 아이 역시 일상적으로 샌드백처럼 체벌이 가해진다. 그렇게 계속해서 예쁜 아이인 가희가 보육원에서 입양되어 온 양부모에게 계속해서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난다면 이야기는 아주 심심한 이야기로 끝이 날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글 속의 가희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그들에게 더 큰 생채기를 낸다. 어쩌면 자업자득일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하고, 아이인 가희는 아이의 마음으로 안 될 마음을 먹는다. 엄마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던 아이. 아빠의 관심이 필요한 아이였지만 엄마는 자신의 죽은 아이였던 송이만을 생각한다. 마음이 다친 엄마는 가희를 데려온 이후로도 아이에게 마음의 방을 내어주지 않고, 아빠는 그저 지켜 볼 뿐이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가고 엄마는 다시 임신을 하게 된다.
다시 봄은 찾아오지만 아이에게는 봄이 아니었다. 동생이 생긴다는 것이 공포였고,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를 공포에 사로 잡혔다. 두 사람은 아이의 혼란스러움을 알지 못하고 그저 새로운 봄만을 기다렸다. 아이는 집안의 포지션을 제대로 찾이 못한 가운데 엄마의 미소를 쳐다보며 마음의 칼을 조금씩 키우고 있다. <국수>를 읽다보면 모든 의미가 중의적인 표현으로 의미가 읽히는 부분이 많았다. 하나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의 묘미.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눈을 뗄 수 없었다.
아이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일상의 무서움이랄까. 1차적인 가정에서 아이가 변모하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고, 2차적으로 사회에서는 가희가 이중적인 수식어가 붙기까지 다른 이들의 눈은 어디로 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변모하는 사이 인물들은 괴물이 되고, 피해자가 되어 사라진다. 진짜 뜨거운 맛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