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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작품: 나를 기억해 (작가: 김노랑, 작품정보)
리뷰어: 선작21, 18년 10월, 조회 121

<채식주의자>의 느낌이 납니다. 조금 허세를 섞어서 말하자면 <페스코주의자> 정도의 냄새라고 할까요. 읽으면서 복잡한 글이었고, 또 그런 만큼 좋은 글이었습니다. 아주, 그리고 많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런 정도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필력은 저를 신나게 만듭니다! 와! 또 존잘님이야! 내 글이 묻히게 생겼어!

…어흑흑.

시퀀스는 고백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깔끔하고 매끄럽게 흘러가는 오프닝 신은 일상의 조각과 엄혹한 감정의 동요를 잘 드러냅니다. 무심함의 행동 / 감정의 무행동으로 확연한 대비가 이뤄지는, 명료하고 유려한 오프닝이었습니다. 부서지지 않은 가정과 부서진 ‘나’ 라는 주제는 꽤 많이 변주되었고, 그만큼 차별화를 두기 힘듬에도, 이건 첫 눈에 들어올 만큼 좋습니다.

이후에 작품은 회상을 통해 미려한 과거 -> 균열 -> 부서짐의 정석적인 전개를 충실히 따릅니다. 굳이 억지로 트집을 잡자면 두 가지가 있겠습니다. 첫째로, 회상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습니다. 오프닝 신을 제외한 모두가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 이렇게 되면 오프닝의 유려함에 비해서 지나치게 오프닝의 ‘의미’가 퇴색됩니다. 오프닝이 너무 아름다워서, 단순한 ‘오프닝’이 아닌 일종의 타이 인이 되었으면 하는 자그마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호기심 제시 -> 호기심 해결!’의 구조로 가기에는 필력이 너무나도 아깝습니다. 이는 결말의 미진함과도 관계가 있는데, ‘첫 눈물’이라는 제시어의 등장이 너무 뜬금 없는 느낌입니다. 데이트의 묘사가 너무 달달했기 때문일까요. ‘내’가 ‘사랑에 눈이 멀었다’ 는 걸 더 짙게 후회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살짝 생각해봅니다.

두 번째 트집은 섞인 필력…이라고 해야할까요. 고백체로 이루어지는 문체 전반은 미려하고 아름다운데 비해, 몇몇 섞인 클리셰적 대사들이 가끔가다 튀어나옵니다. 원래라면 오히려 안정적이었어야 했을 이러한 클리셰 기용이, 오히려 작가 본연의 필력에 짓눌리는 느낌입니다. 이를테면 “내 웃음 위로 햇빛이 부서졌다고.” 같은 부분이 그렇습니다. 인상파 작가전 사이에 누군가 모나리자를 하나 프린트해 걸어놓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살짝 살짝, 어울리지 않는 부분적 대사가 있습니다. 본인의 필력을 믿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별도로,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감정의 폭풍들은… 제가 따로 감평할 만한 실력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너무 잘 쓰셨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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