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의 서두에 이런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지만, ‘당신이 기다리는 버스’는 제가 처음으로 쓴 단편 소설,
‘카페 온더 아이슬란드’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브릿G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제가 고등학생 때 썼던 글이죠. 모든 소설이 결국 주인공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유독 그것에 대한 주제성이
강한 글이 있습니다. 물론 정확한 주제가 뭔지는 약간은 모호하지만, 주인공인 나와
나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는 어떤 인물과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글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소설은 한 소년의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추운 겨울날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소년은 한 신비한 버스를 타게 되고,
버스 안에서 소년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신비한 여인을 만나 대화를 하고
곧 자신의 현실로 돌아온다는 내용입니다.
배경과 설정은 꿈과 같고, 나오는 상대 인물도 딱딱한 현실의 인물이 아닙니다.
현실의 인물이라기 보다는 주인공을 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관찰자입니다.
즉, 소년이 버스 안에서 만난 한 여인은 신, 혹은 전지적 주체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결코 간섭하지 않습니다.
어설픈 위로를 하는 것보다는 죽고 싶다는 소년에게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하는 담담한 말을 건넵니다.
하지만 선택은 너의 몫이다. 이 상황을 좋게 만드는 것도, 나쁘게 만드는 것도
결국 너의 몫이다 라고 말을 합니다.
생각해보면 20세기에 등장했던 신의 모습과 21세기에 떠오른 신의 모습은
이 부분에서 크게 달라진 것 같습니다. 20세기까지의 신은 인간을 구원해줄수 있는
선하고 전지전능한 존재로 등장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종교의 영향력 또한 굉장히
강했습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 신은 인간을 구원해주는 누군가가 아니라,
다만 인간에게 어떤 환경을 주고 그냥 바라보는 존재로써 문학과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에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삶은 더욱 주체적으로 변한 것 같기도 하지만,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은 혼란의 시대에 들어가게 된 것이지요. 더이상 누군가 이게 ‘선’이다, ‘악’이다
라고 또렷하게 규정지어 주지도 않고, 구원이라는 것도 기대하기 애매한 시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뭐랄까… 약간은 버림받은 것 같은 기분까지 들게 말이죠.
그래서 최근에 보는 대부분의 소설 속에서 보면… 주인공들이 어딘가 모르게
위축되어 있고 의기소침한 모습입니다. 겉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마음 안에는
상처받은 아기새들이 있어요.
작중에서 아이는 그 신과 같은 여인의 말을 듣다가도 마음 속에서는
거칠게 반항하고 욕도 합니다. 하지만 소심한 반항일 뿐 결국 표현은 못하죠.
이 부분이 뭐랄까… 사람들이 세상의 진리, 혹은 높은자에 대해 품는 마음이 그려집니다.
‘결국 내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바꿔주지 못하는 주제에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는
당신에게 없다’ 라는 것과 같죠.
크게는 신에 대한 반항이고 작고 현실적으로 들어나는 것이 사회에서
보여지는 온갖 갑을관계에서의 갈등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과거에는 참을만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신분의 질서와 사회의 질서에 반드시 종속되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것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착한 아이처럼 말을 듣는다는 것은 바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더이상 구원자가 아닌 신, 전지전능하지 않은 신이기에,
이 소설에서는 마지막까지 주인공이 시원하게 고민을 해결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도, 소년은 자기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없다고 중얼거리니까요.
사실… 참 솔직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모두가 한번쯤
좋은 말이나 충고를 들어며 혼자 중얼거려봤을 법한 말이기도 하죠.
글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글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많이 힘들거지만 잘 해낼 수 있지?’ 라고 여인이 말을 하고,
소년은 해낼 수 없을 거라고 중얼거리면서 버스에서 내리는데…
뭐랄까, 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뭔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적어도 뭔가 풀렸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독자는 읽으면서 소년의 입장에서 읽기 때문에, 소년의 그 불타는 듯한
화, 울컥함… 이런 것들이 좀 이해가 되게 풀리고 해소가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기대를 하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독자도 같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구요.
그래서 약간은 여인과 소년의 대화가 흥미롭게 길어졌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꼭 문제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모르게 이해가 좀더 되는, 그런 느낌이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고 독자 입장에서 욕심을 내보게 됩니다.
겨울에 대한 묘사는 생생하고 좋았습니다. 한번 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면
저도 그런 버스를 탈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그 버스를 타게 되면
만나게 되는 사람은 멋진 젊은 남자나 푸근한 할아버지면 좋겠고, (제 개인 취향)
전 좀 오래동안 그 사람 붙잡고 이야기 할랍니다.
리뷰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