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곳곳에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말이 있다.
‘사람 사는 곳,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맞는 말이다. 누구나 자신이 다녔던 학교, 직장, 군대, 단체 등을 떠올려보면 화를 치솟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특히나 초, 중, 고, 12년을 다니는 학창 생활은 불만이 있어도 참고, 불의를 봐도 눈을 돌리고, 문제가 있어도 그러려니 넘기는 것에 익숙해진다. 이 작품에서는 곳곳에 그러한 배치를 넣었다. 학생들을 성적으로 우열을 가린 반, 수능 시험만이 전부인 듯한 시스템, 시험 컨닝, 절도, 폭행, 불법 촬영, 흡연, 그리고 나트륨을 이용한 연목 폭발까지. 물론 마지막의 연못 폭발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스트로베리 필즈는 영원히’ 이후 오랜만에 이산화 작가님 작품을 읽게 됐다. 개인적으로 ‘스트로베리 필즈는 영원히’의 배경인 1960년대 히피 문화와 당시 미국 사회의 표현이 좋았었다. 작가님의 취향이 묻어나서 좋았는데, 이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사실 제목을 보고 이런 결말을 유추할 순 없었다. 분명 작품 소개에서는 ‘여러분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학교 연못에 나트륨을 던지고 싶었던 적은 있나요?’ 라 적혀있었고, 태그도 귀엽게 학창물이라 적혀있어서 왠지 모르게 중2병적인 가벼운 뭔가를 기대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맞다. 중2병은 맞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스케일은 훨씬 컸었다. 첫 시작은 학교 전체를 굉음과 함께 연못이 나트륨에 의해 폭발했다는 것이었다. 의외로 범인은 쉽사리 자수하며 사건은 흐지부지 끝난다. 9월 모의고사를 앞두기도 했고, 수능까지 남은 기간 두 달 뿐이었으니 다들 그쪽으로는 금방 신경을 끈 것이다. 주인공(이하 ‘오펜하이머’)은 범인인 ‘텔러’를 보며 의아해한다. 왜 조용하게 지내던 그가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일까? 단순히 연못에 나트륨을 던지면 어떻게 될 지란 이과적 흥미 때문에? 오펜하이머는 당연히 아니라 생각한다. 여느 일반계 학교가 그렇듯 우등반(작중에서는 SKY반)은 혜택이 많다. 그런 혜택 중에는 구술면접 대비를 위한 시간이 있는데, 작중에서는 그런 구술 면접 대비로 학생들끼리 면접생과 면접관을 번갈아가며 연습한다. 이때 오펜하이머는 가설 하나를 세우며 면접생 역할을 한 학생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과학자가 누구입니까?’ 라 묻는다. 구술면접을 거의 안 해본 학생들은 준비되지 않은 채, 진솔하게 자신이 존경하는 과학자의 이름을 댄다. 이걸 토대로 오펜하이머는 어떤 과학자를 존경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성격 타입을 유추한다(주인공은 오펜하이머를 존경).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흔히 존경받는 과학자를 말하며 성격의 유형을 알 수 있었다면 텔러(범인)는 달랐다. 주인공이 존경하는 오펜하이머(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외침)가 청문회에 갔을 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이 텔러였으니까. 그리고 텔러는 수소폭탄을 만들어낸 핵물리학자였다…
이후 오펜하이머는 수능을 준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여유를 갖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이 작품은 추리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준다. 추리 소설 주인공답게 몇 달에 걸친 관찰과 추리를 하고, 독자들은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점점 긴장감을 갖게 된다. 한 발짝, 한 발짝 연못 폭발의 원인과 텔러의 범행 의도를 알아가는 과정은 이 사건이 학생의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분명 태그에서는 ‘학창물’이라 적혀있었지만, 실상은 그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오펜하이머가 텔러의 범행 의도와 진실을 깨달았을 때의 통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범행 도구 은닉 장소인 도서실을 찾아낼 때는 끝을 향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곳엔 이 소설 최대의 반전이 존재했고, 지금까지의 주인공의 행보는 독자들의 뒤통수를 세게 친다.
마지막 결말의 경우, 충격적이고 섬뜩하면서도 왠지 모를 시원함에 웃게 된다.
분명 이 단편 소설을 본 독자들도 그렇고, 많은 학생들이 공감할 것이다. 학창 시절, 한 번 쯤은 학교가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물론 이런 구체적인 계획과 뇌 구조가 의심스런 사상, 실행 능력은 한국 현실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이를 먹은 지금도 재밌게 읽혔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중2병 냄새 짙게 풍기는 작품을 좋아하던 어렸을 때의 내가 봤었다면 더 좋아했을 것 같다. 특히나 마지막 결말은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그 이미지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취향을 제대로 두들겨 맞은 듯해 다 본 지금도 기분이 좋다.
사실 이 작품은 단편이기에 결말이 깔끔하게 느껴졌지만, 만약 장편이었다면 어땠을까? 왠지 모르게 이 작품을 다 보고 나서도 결말 이후의 오펜하이머와 텔러의 행보가 궁금하다. 물론 이 작품은 학창물이기에 느낄 수 있는 재미와 공감이 있지만, 이미 둘에게 사로잡힌 독자들은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이후 행보를 상상할 것이라 생각한다.
과연 둘은 함께 세상을 끝냈을까, 아니면 세상이 둘을 끝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