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살아낸 이들이라면 안다. 찌더운 날일수록 냄새이든 향기이든 대기 속에서 훅, 퍼져버린다는 걸. 이야기는 그 계절의 끄트머리에서 시작된다.
종이며 책이란 물건이 구세계의 추억인 세상에서 과거에 관한 연구를 하던 사람들이, 이백 년 전 한국의 국어 학자 진과 이름 모를 외계인 친구가 나눈 편지를 발견한 것이다. 단출한 액자식 구성이지만 여운은 진하다.
설정 또한 머릿속에서 충분히 생각하며 갖고 놀기 재미난 작품이라고 느꼈다. 소리 언어를 사용하는 지구의 인류들에게 모든 소리가 언어는 아니듯이 진의 외계인 친구 종족에게도 모든 향기가 언어는 아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보이고 들리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에 주로 익숙한 우리 인류도 매일같이 향기나 냄새를 만들어내니까, 외계에서 온 타인-향기 언어를 사용하는-의 시선에서 볼 땐 인류가 ‘의미를 종잡기 힘드나 양만은 풍부한 말들로 가득 찬 일상을 보내는 매력적인 존재’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도 재미난 포인트이다.
읽는 동안 머릿속에 떠오른 다른 작품들이 있었다. 김초엽 작가의 <스펙트럼>이라는 단편과 드라마 <스타트렉> 시리즈이다. 전자는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라는 문장으로 유명한데, 소설의 내용을 잘 함축한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스타트렉 시리즈는 SF 영상물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알 만한 유명 TV 시리즈이다.
이 리뷰의 대상 작품까지 총 세 작품엔 공통점이 있다. 경이감.
SF 작가들에게 재밌는 SF의 특징에 대해 알려달라 요청하면 그들이 읊는 특징 중 하나는 십중팔구 ‘경이감’이다. 그 경이감이 찾아오는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익숙한 방식은 역시 익숙한 ‘나’와 낯선 ‘타인’의 접촉이 아닐까? SF를 감상하는 독자는 색채 언어를 구사하는 루이를 만나고, 벌칸과 퍼스트 컨택트를 경험하고, 진과 외계인 친구가 나눈 편지로 경이감을 맛볼 것이다. 동시에 경이감은 진과 외계인 친구의 경계뿐만이 아니라, 독자와 작품의 경계도 허문다. 심심풀이 부럼 같은 선물을 주는 것은 덤이다. 작품을 감상한 이들이 커피 향을 맡을 때, 종종 머나먼 우주 너머의 외계인 친구가 지구인 친구에게 보냈던 통신을 떠올릴 수 있을 테니.
작가는 액자의 테두리에 속한 사람들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다. 주인공을 비롯한 연구진의 결단으로, 진과 외계인 친구 간에 오간 감정은 지켜진다. 이백 년 전 커피 향을 감싸는 온기 한 겹으로. 그리고 다정한 온기와 함께 커피 향은 널리 퍼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