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곳곳에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브릿g 실시간 인기 작품에 꼭 올라있는 작품들이 몇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천명기’라는 장편 소설이다. 이 작품의 장르는 태그에도 나와 있듯이 동양 판타지, 군상극이다. 신기하게도 브릿g 실시간 인기 상위권 작품들 중에는 군상극 작품들이 몇 있다. ‘피어클리벤의 금화’, ‘하늘의 아이들’ 등이 그렇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캐릭터들의 생각을 집중해서 볼 수 있는 군상극을 좋아하기에 이 작품도 꽤 친숙하게 다가왔다.
이 작품은 동양풍의 세계관으로, 작중 배경은 두 곳으로 나뉜다. 서국의 6주 중 하나인 ‘예주’와 대천명국의 수도 ‘아사달’이 배경이다. 이 두 곳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계속 장소를 바꿔가며 전개한다. 예주의 경우 주로 예주백의 아들이자, 예주 경윤인 ‘류진성’이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주변 인물들로는 예주 병부좌총관 ‘녹현’, 예주 내사총감 ‘도훈’ 이 있다). 하지만 아사달의 경우 시점이 다양하게 변한다. 처음에는 숨어 다니는 술사인 ‘현원’이었고, 그 이후에는 천위대장군 ‘렴호군 하연’, 천위군 12군단 수장군 ‘무영’, 천의청 서관 대교령 ‘신지 성윤’, 그리고 태자 ‘청란’까지.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시점으로 아사달의 이야기는 전개된다.
간단한 줄거리로, 예주에서는 서국 왕의 명을 받은 공상차사 ‘여충길’이 찾아와, 2년 간 모피를 정주로 안 올린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물론 정주에서도 가난한 예주에 5년 간 식량을 안 보내줬기에, 여충길은 과거의 책임을 묻기 보다는 현재 필요한 모피만 주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예주 경윤 류진성은 현재 서국 남부에서 민란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굳이 모피를 안 내줘도 될 것이라 보고 강짜를 부리려 한다(물론 강짜라 하기엔, 먼저 정주에서 지원을 끊었으니 예주 입장에서도 할 말은 많다). 류진성은 예주 경윤인 동시에, 30년 전 멸망한 나라인 예주의 전신 예천악의 한간이다. 작중에서 류진성의 아버지, 예주백 ‘류정위’가 배신해 망한 예천악을 굳이 류진성이 부활시킨 걸 보면 속에 무슨 꿍꿍이를 숨기지 않았을까 싶다.
동시에 아사달에서는 보름에 가까운 축제인 천경 신춘절이 시작된다. 축제와 함께 누군가는 기뻐하고, 누군가는 싫어할 태자 책봉식이 거행된다. 이런 경사스러우면서도, 혼란스러운 와중에 천경을 지키는 대결계에 균열이 생긴다.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으로 이 사건을 조명하며, 현재까지는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안 나왔다.
이 작품은 군상극답게 정말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작가님이 말씀하신대로 각 캐릭터들은 단순한 성격이 아닌, 복잡한 일면을 갖추고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보니 일회성 캐릭터가 아닌, 정말 살아있는 인물을 보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만큼 각 캐릭터에 대한 설명과 비중으로 많은 화수를 세계관 설명과 캐릭터 소개로 할애한다.
물론 군상극이기에 하나하나 캐릭터에 공을 들이고, 각자의 이념과 생각, 입장차를 보여줘야 되기는 한다. 세계관도 기존에 있는 역사를 차용한 것이 아니기에, 각국의 상하관계, 지명, 특수능력, 숨겨진 설정 등, 독자들에게 설명해줘야 한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사실상 2장 분량인 30화까지는 스토리 전개가 거의 없었다. 각 화마다 새 인물들이 등장하며 그들의 소속과 성격, 과거, 입장차를 설명하다보니 매 화, 매 화가 동일한 시간대를 유지한다. 물론 생동감 있는 캐릭터들과 멋진 세계관으로 눈을 사로잡다 보니, 그러한 전개 속도가 무슨 상관인가 싶을 정도로 다음 화를 찾게 만들긴 한다.
게다가 30화까지의 분량은 단행본 한 권 정도기에, 소설 1권이라 보면 된다. 7년 전인 프롤로그 두 편, 예주경에서의 한 편, 대천명국에서의 한 편으로, 대부분의 책이 그렇듯이 이 소설도 세계관, 캐릭터 소개와 사건 초반을 다뤄 단행본으로는 괜찮다.
단지 웹소설은 실시간 연재라는 특성상, 단행본과는 다른 호흡을 갖고 있다. 분명 단행본으로 분량 계산을 하면 괜찮은데, 연재로 보니 느리다고 느껴질 수 있다. 요즘 웹소설들이 빠른 전개와 짧은 문장으로 빠르게 읽히는 방식이 주류라면, 이 소설은 과거 웹소설이 흥하기 전인 단행본 시절의 호흡을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은 급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충분한 재미를 준다.
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무수한 떡밥의 양이다.
간단하게 서장에 나오는 떡밥으로는,
살아남은 시율허 가문의 직계 남매는 예주 땅에 들어선 뒤 어떻게 된 것인가?
서장의 제목이 ‘역천’인 건 앞으로 류진성과 시율허 가문의 생존자들이 보여줄 것들이 기존의 체계를 거스른다는 것인가? 혹시 류진성은 멸망한 예천악의 부활을, 시율허 지설과 시율허 지효는 가문의 복수 혹은 자격 있는 새로운 왕을 내세우려는 것일까?
본편 중 예주를 배경으로 한 떡밥으로는,
공상차사 여충길이 본 거대한 새는 단순히 예천악에 존재하는 생물들 중 하나일까, 아니면 시율허의 생존자들이 갖고 있는 새일까?
왜 금렵기에 산을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인가?
지금 서국의 민란은 앞으로 정주는 물론이고, 예주와 대천명국에 무슨 영향을 끼칠 것인가?
아사달을 배경으로 한 떡밥으로는,
천경 대결계의 균열은 왜 일어난 것인가. 도대체 누가 일으킨 것인가?
무영과 현원이 맞붙은 자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도대체 현원의 정체는 무엇인가? 무영이 ‘용’이라 한 것은 호연씨를 말하는 건가?
천의청 서관 교령 ‘시율허 류화’는 왜 시율허 가문의 반대편에 섰던 것인가?
이 무수한 떡밥들을 작가님은 어떤 식으로 풀지, 독자로서 다음 이야기가 심히 궁금하다. 이 떡밥들이 다 복선으로 회수될지는 모르겠지만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알고 싶으니까.
이 작품의 소개를 보면 이러한 문장들이 적혀있다.
천강天講에 이르기를, 임금에 충성하고 아비에 효행하라.
그러나 왕은 늘 이 땅에서 무언가를 앗아가는 자였으며 그때마다 아버지는 옳지 못하였다.*
이 땅에 아직 하늘님이 계시며
천의天意가 지상을 떠나지 않았다고 믿었던,
최후로 찬란하던 시대의 끝에서세계가 정명한 왕을 찾는다.
과연 이 글귀에서 말하는 정명한 왕이란 누구일까.
예천악 한간인 류진성?
대천명국 태자 청란?
아니면 시율허를 배반한 의정왕의 아들, 렴호군 하연?
아직은 작품의 초반부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와 복선들의 회수, 다양한 인물들의 생각이 기대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다리는 건 시율허의 살아남은 직계인 시율허 지설, 시율허 지효 남매의 등장이다. 과연 그 둘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솔직히 브릿g에는 당장 출판 되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퀄리티 높은 작품들이 많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를 보면서 더욱 아쉽다. 빨리 단행본으로 나왔으면 싶은 작품들 중에는 이 작품도 들어가기 때문에.